숭례문이 불탄 것을 알았을 때 나는 kimmel의 컴퓨터실에 있었다. 옆 자리에 있던,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 한국인이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죄송한데 잠깐만 제 짐 좀 봐 주시겠어요?’ ‘네’ 그가 돌아왔을 때 나는 국보 1호 훼손 소식에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고맙습니다.’ ‘네.. 저기요 뉴스 보셨어요?’ ‘네? 무슨 뉴스요?’ ‘숭례문 화재로 거의 다 탔네요.’ ‘아, 그거요.. 네 봤어요. 저기 짐 봐 주셔서 고마워서, 이거 좀 드세요.’ 아이비 크래커였다. 유학생들로 일반화 할 수만은 없는 무덤덤한 반응을 섭섭해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한 5초 동안 ‘내 반응이 오바인가?’ 하고 가만히 생각했다. ‘잘 먹을게요.’ 컴퓨터를 끄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숭례문 화재는 시각적으로, 상징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자극적인 사건이다. 감정을 마구 유발하는 일이었다. 불국사는 매일 보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숭례문은 지나다니면서 매일 보는 일상 속의 문화재 대표주자였고, 방화로 일어난 화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제 거의 확실시되는 것 같던데) 대구 지하철 참사 때의 강렬한 트라우마가 자극하는 또 하나의 분노와 허망 포인트다. 그리고 현 대통령 집권 시절 소실된, 새 대통령 당선자의 서울 시장 재임시 개방이 결정된, 일련의 사건과 구설수와 학자적, 문학적 존경심이 맞서 평가가 엇갈리는 문화재청장 관할하의, 낙산사와 동종, 화성 등지 등과 이어지는 불기로 다친 역사적 건축물이라는 점은 양립하기 힘든 여러 극단적인 책임과 대책에 대한 주장을 낳고 있다.
나를 비롯한 내 주위 친구들 중 상당수의 반응은 ‘너무 슬프고 안타깝고, 누구 몇 사람의 전적인 책임으로 모는 것은 충분히 종합적인 결론이 아니다’였다. 물론 디테일은 갈린다. ‘한국은 왜 이러냐’도 많고, ‘외국에 창피하다’도 있고, ‘복원에 들 돈이 걱정’, ‘정치적 배후가 있다’ 등등.. ‘누구의 책임이냐’에 대해 하나의 답을 내 놓을 수 있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그건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답을 가리키는 회전화살이 한두 명을 콕 찝어 가리킬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이유로 사태 파악을 다 못했다거나 정확한 사건 경위를 모른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누구 책임이 제일가는지는 호락호락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이다. 방금 ‘양비론’에 대한 극렬한 혐오의 글을 읽었다. (양비론이란 일반적으로 두 편이 서로를 비난할 때 둘 다 틀렸다며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불쌍한 논조를 말한다) 그런데 양비론은 그 자체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특히 두 편이 뭔가가 전적으로 네 탓이라며 죽이려 드는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지성적 논리다. ‘대안이 없다’는 점을 정의에 포함시키면 약간의 화살을 그리 돌릴 수 있겠지만.. 물론 양비론은 내가 표현하는 중도, 융화적 입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은 아니다. 다만 양쪽에 쉽게 붙지 않는 사람들을 싸잡아 양비론이라면서 넌 모냐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에 잠깐 옆길로 샜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책임은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책임도 있다. 노무현 현 대통령의 책임? 조금은 억지가 포함되었긴 하지만 논리의 끈을 주욱 늘리면 하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단 국내외의 큰 사건들(피랍이라던가, 해양오염이라던가)이 어느 정도는 대통령에게 원론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맥락에서면 가능하다. 책임이 한 사람이라는 의견, 책임을 따지지 말고 앞날을 생각합시다라는 의견, 둘 다 초점이 어긋났다고 본다. 후자의 경우 건설적이려는 정서에는 공감하지만 책임 규명이 있어야 앞날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법이니까.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책임이란 어떤 것일까. 일단 지금 현재로서의 책임은 문화재 관련한 초유의 사건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사건의 경위와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밖에 소실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국민과 통감하는 것 뭐 이런 것들이다. 한편 그가 숭례문 화재의 원인에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면 청와대와 국회를 설득하여 납득할 만한 수준의 문화재 보호가 이루어지게끔 자금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 선행된 화재 연구로 소방대에 가장 효율적인 진압 방식을 전달하지 못한 것, 숭례문 관할 구청(서울시청, 서울시 중구청)의 숭례문 관련 정책에 충분한 훈수를 못 둔 것 등이 있다. (우리말에서 책임이라는 단어는 이렇듯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지금 해야 할 일, 의무에 포함되는 일 이런 의미이고 또 하나는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잘못. 영어에서도 그러하듯 같이 쓰이는데 뜻이 약간 다르다)
그는 지금 그가 해야 마땅한 일들은 잘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 누가 있었든 해야 할 일은 지금 잘 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충분히 다 했다. 문제는 그가 ‘했었어야’ 하는 일인데, 그가 ‘책임을 지는’ 것은 맞지만 ‘책임을 그에게 물어야’ 하는 것은 살짝 아닌 거다. 즉, 그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이런 비극적인 일(막을 수 있었건 없었건, 그의 잘못이 있건 없건)이 발생한 것에 따라 사건 이해, 설명, 수습, 복원 과정을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지만, 왜 숭례문이 불타 없어졌느냐에 대한 ‘책임'(여기서는 원인 제공의 잘못의 의미)을 그에게만 묻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윗 문단에 썼듯 그가 ‘원인 제공의 잘못’에 포함되는 일을 한 것은 전부 타 기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발생한 어려움이다. 그가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문화재청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기는 한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살펴보면, ‘재정적 지원을 못 받은 점’은 그를 비롯한 문화재청의 잘못 약간, 재정적 지원을 여기에 할 여유가 없었거나 그 중요도를 낮게 평가한 중앙정부의 잘못 약간이고, ‘진압 방식 전달을 잘못한 점’은 소극적인 대응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듯 문화재청의 잘못이 좀 더 크고 예방 연구를 선행하는 것을 불가능케 한 인력 부족의 시스템적 잘못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해당 관할 구청의 정책에 충분히 관여치 못한 것 역시 문화재청의 잘못도 있지만 당시 시장을 비롯한 시청의 독자적인 행정 스타일에 옆에서 잔소리를 하기가 어려웠을 것도 참작할 수 있겠다.
즉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청 전체의 잘못이 있기는 하되, 사건 당시 신속 대처 실패에 대한 일차적 잘못(책임이라는 말 헷갈릴까 해서 자제한다)을 제외한 나머지 몇 가지는 다른 여러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힌 다면적인 문제였다고 느꼈다.
여기서 별도로 유홍준이라는 인물에 대한 여러 엇갈린 평가 때문에 이 사람이 져야 할 짐이 얼마인지에 대한 말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물론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문화재에 대해 아는 것이 없
차분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이웃하고 싶은 논지와 전개를 보여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이 메이저 언론을 통해 소개되어야 현재 선정적인 보도에 우왕좌왕하고 있는 대중들이 냉정해질 수 있을 텐데요. 건승하세요~ 그리고 링크했습니다.
저도 차분하게 쓰여진 글 잘 봤습니다. 🙂
유흥준..씨 책 중학교 필독도셔였지..
이오공감보고 왔습니다.
링크추가하고 갑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원인은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종묘를 노렸었다는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이성을 찾게 되는 듯 하네요
링크도 추가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차분한 논조로 해주시는 말씀 인상 깊게 잘 보았습니다.
잘 읽으신 분들 : 이 긴 걸 잘 읽으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고마워요 : D
다른글을 보면 화만 났는데 이 글을 읽으니 저도 이성을 찾게 되는 듯 하네요.
정말 당연한 건데, 이렇게 당연한 논리인데, 왜 다들 애써 외면하고 니 탓이네 욕만 할까요…
차분한글 차분하게 잘 읽었다는게 대세
잘하셨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