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모자 뒤로 머리가 꽁지처럼 삐죽 나오길래 생각을 하니까 머리를 자른 지 두 달이 넘었다. 숱이 많아서 한 달에 한 번은 잘라야 인간답다. 단골인 가게 「세이토모코」는 용역의 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일본인 미용사들이라서 동양맨 머리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여기만 찾는다. Hayden 옆에 있는 항상 가는 곳에 작년 12월에 일찌감치 예약을 해 두었는데 오늘 시간 맞춰 가 보니까 공사중이다. 전화하니 참으로 고멘나사이하게 되었다면서 우리 모두 13번길 점포에 있으니 이리 오시라고 했다. 별로 언짢을 것 없는 일이라서 가서 항상 내 머리를 해 주는데도 내가 이름을 매일 까먹는 미용사에게 머리를 부탁했다. 어제 새벽까지 물만두와 두유를 먹으면서 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미용실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길 가다 일본어만 들었어도 생각났을 텐데 미용실까지 겹치니 여운이 많이 길었나보다. 꽤 짧게 쳤다.
오늘은 김치찌개를 해 먹었다. 부대찌개를 할지 김치찌개를 할지 어제 고심하고 여러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한 끝에 부대찌개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재료상으로 김치찌개 더하기 알파일 뿐인 부대찌개를 위해 소시지와 콩 통조림 같은 것을 추가로 사는 것이 과하다고 여겨져서 있는 재료에 두부만 사 넣으면 되는 김치찌개를 조리하였다. 아, 두부만이 아니고 고추가루도 없다.
M2M에 가서 고추가루를 찾았는데 하나같이 너무 컸다. 난 고추가루 총합 한 스무 숟가락만 있으면 이번 학기 요리엔 충분해서 큰 통은 두려웠다. 따라서 기숙사 바로 건너편에 있는 일본 상점인 <일출마트>로 발길을 돌렸는데 예감이 적중, 손가락만한 칠리페퍼분말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마늘 두 톨을 으깨고 양파도 조금 다져서 기름 한 숟갈과 고추가루와 함께 먼저 볶았다. 한켠에 통조림 햄 몇 조각을 삶아서 담백하게 하고 김치를 잘랐다. 김치가 통에 가득가득 든 맛김치라 넣을 김치국물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김치를 넣고 볶다가 주워먹으니 맛이 상서로왔다. 이쯤해서 밥을 올리고 아 찌개는 성공이구나 하며 쾌재를 불렀는데 그 다음에 냉장고 문에서 미제 닭 육수를 꺼내 한 컵 넣은 것이 잘못이었다. 푹푹 탄수와 화물이 결별할 때까지 끓이는 수푸에나 넣던 이것을 맑고 칼칼해야 할 찌개에다 넣으니까 잘못된 존재감이 확 살아났다. 김치찌개 국물이 닭맛이었다.
실패는 아니었지만 육수맛을 희석시키려고 원래 계획한 양의 두 배 가까이를 만들어야 했다. 요사이 꼭 요리 마치고 먹으려 앉을 때 즈음해서 오는 엄마 전화. 엄마 김치찌개의 비밀은 자제였구나. 곰국이 남아도 왜 김치찌개로는 안 만드는 지 인제야 알았네. 옛날 <순풍 산부인과>에서 김찬우와 권오중이 펼치던 김치찌개 요리대결이 생각난다. <식객>이 되기 전 아마추어 시절 권오중이 김찬우의 담백한 국물맛을 따라잡으려고 결국 사골국물까지 썼으나 패했던 그 이야기가.
그런데 농담이 아니고 정말로 요사이 꼭 그쯤 오는 엄마 전화. 그제 나 스파게티 한 날 밤에 통화했더니, 세상에 이런 일이 집에서도 스파게티 해 먹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 스파게티 자주는 안 한다) 난 토마토로 했는데 엄마는 크리임을 넣고 했다고 했다. 성희와 아빠도 반응이 좋았다니 우리 가족은 같은 날 우연찮게도 저녁밥으로 양식 해물국수를 먹은 것이다. 난 이런 싱크로가 눈물겹다.
겹고 저리고..
쿠하 ㅎㅎ 김치찌게…맛겠다.
맛었다ㅋㅋ
혐오스런 마츠코 여운이 오래 남았었죠ㅎ 김치찌개, 김치만 기름에 볶다가 물넣고 10분 끓인후 김치찌개용 참치(중요)를 넣고 5분 더 끓인뒤 썬파를 조금 넣고 약간 끓이다 끄면 저엉말 맛있어요.ㅎ 김치찌개용 참치에 간에 맞춰져 있는 듯. 정말 기름, 김치, 물, 참치, 파밖에 안 들어갔는데 맛있어요. 김치에 마늘도 들어가고 실파랑 이것저것 들어가니까요. 뚝배기가 비결인지도 모르겠지만 (다이소 1500원) 한번 이렇게 해 드셔보세요ㅋ 근데 김치찌개용 참치를 팔까 모르겠네요;;
댓글에 열정이 느껴져요..
참치는 쉽게 구하는데 김치찌개에 넣은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제 실패비결은 닭육수라 그것만 개선해도ㅋㅋ
너 다시마랑 멸치 좀 가져다 주리?
ㅋㅋthanks but i’m set
놀러나 또 와
몇일전 가쓰오부시로 망해버린 만두국을 떠올리며 급 씽크로. 참을 인자 세번이면 요리를 살린다. 오늘도 부엌에서 자제삼창하고 시작해야겠습니다.
맛있으라고 넣은 것 때문에 파멸한 요리는 눈물겹지요.
네, 편리한 동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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