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회학 전공을 전세계에 선언하였다. Puck 빌딩에 가서 필요한 것 써 내는 동안 <사회학 이론> Luke 교수님이 카운터에 카라멜 먹으러 와서 「내 강의가 재밌었나 봐」 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꾸했다. 요새는 종교에 대해서 읽고 토론한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다.
나는 결국은 예술 쪽으로 돌아 나갈 것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Comte와 Durkheim의 실증주의(positivism)는 종종 적지않은 부담을 준다. 사회를 사실이 규정하는 과학적인 실제로 보려면 모순을 헤쳐서 말이 되게끔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무자비한 짓을 하기에 나는 넌센스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컨데 생각 있는 사람이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틀림없이 의심하고 고뇌하고 결국은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선택이다. 다시 말해서 얼마나 토씨 그대로 내 종교를 믿을지, 얼마나 진심으로 믿을지, 얼마나 의심하지 않을지는 개개인이 적당한 선을 찾는 수밖에 없다. 다 믿는다고 의심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진심이라면 그건 오히려 다 믿으려고 애는 쓰겠다 의심하지 않으려고 힘써 보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지(대단하다) 내 믿음이 완전무결하다는 자만일 수는 없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또 삶을 알면 알수록 종교는 인간만큼 불완전하고 다양하고 모나고 못나고 가끔은 감동적이지만 또 가끔은 개판이라는 것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 다음엔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타협을 거친, 조건부이거나 불완전한 결정일 뿐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급에서 존재한다 시이고 그림이다 종교가 말하는 모든 사실은 실제하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고 반영이고 힌트지 현세의 사실 그 자체와 같은 종류의 literalness(토씨그대로 받아들이는 정도)로 담으면 안 된다. 이런 결론이 종교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가? 몰라, 과제 제출하기 전까지는 마음을 정해야 된다.
그제는 아직도 방학이라 뉴욕 체류중인 사라미와 탕수육 즐겼음. 왼쪽은 식전 오른쪽은 식후.
사라미 너무 행복해 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탕슉… 나도 탕슉..
와라
아.. 즐겨요 탕수육!!!
헉… 저…저건 탕쓔육이다…. 진짜 행복해보인다 사라미야ㅋㅋㅋ 먹고싶어!!
와라
무자비한 것은 사회학이 아니라 사회죠.
모든 넌센스가 예술이 될 수 없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예술과 사회는 어느 순간부터 구분지어질 수 없게 되었으니,
좀 드라이한 사케를 준비할 참인데, 애니띵 엘스?
실증주의는 구분하자고 합니다.
좀 드라이한 사케면 돼요
반가와요
나도
그럼 와서 연락해 임마
비공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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