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작은할아버지가 3세였을 때부터 업어서 기르셨다고 했다. 그러면 여든 해를 업어서 기르신 거나 마찬가지다. 할아버지가 훨씬 손위인데도 항상 기력이 없는 것은 동생이었다. 명절에 구석자리서 잘 들리지도 않는 불평하며 곶감 좀 가져다 달라는 것이 작은할아버지였다. 어릴 적 난 그래서 세대에 비해 훨씬 어린 아저씨와 아줌마는 좀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항상 친척들이 모두 모이면 가장 늦게 또 재미없게 도착하시고 담소를 오수로 보내시고는 인사하러 나오기가 무섭게 훌쩍 가시는 분이었는데 올 가을에는 위암으로 몇 년을 앓으신 그 분 뵈려고 삼대 친척들이 전부 모였다. 한동안 솔직하게 말해 좀 서먹서먹했던 작은아버지 식구도 그렇게 수다스러웠다고 하니 좋은 일이다. 사춘기를 좀 길게 겪나 싶었던 사촌도 묵묵히 좀 커 보였다고 들었다. 내 얘기가 급해서 이름이 잘 오르는 법이 없었던 성희는 입시 소식 덕에 관심을 독차지하였을 것이다. 나도 분명히 울다가 웃다가 했을 것 같다. 모두 참 좋은 일이다.
한편 아침에 나와 같은 학년 학생이 12층 높이인 도서관 실내에서 실수로 자살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순식간에 다시 문 연 도서관에서 있었던 극작 수업은 약간 뒤숭숭했던 것이다. 금주부터 본격적으로 각자 쓴 단막극들을 토의하는 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많은 말이 오갔다. 나는 지난 주말에 실로 기적적으로 지금 쓰고 있는 극을 멋지게 끝낼 방법을 찾아내었다. Myla는 나만큼 흡족해하였다.
또 사회학 건물에서 Marwell 교수를 만나 다음 학기 수업 들을 것에 대해 얘기했다. 당신의 종교사회학 세미나도 듣고 싶다고 했더니 속으로 허걱 하더니 아직 준비해 놓은 게 없는데 그 강의가 벌써 열렸냐며 당혹스러워했다. 오래 걸려서 샌드위치가 다 식었다. 옆 교무실의 Jackson 교수, 작년에 친해진 Rene와도 오랜만에 조우하였다.
금방 박용오 아저씨도 실수로 갔다고 한다. 어쨌거나 뛰거나 매달리거나 참 좋지 않은 일이다.
번지점프나 스카이 다이빙은 참 좋은 일이라네
ㅋㅋㅋ자네 요새 댓글 시크한데
레비 스트로스도 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