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괜스레 저렇게는 김괜저(@gwenzhir)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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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어할 권리에 웃는다.

엄청 오래된 글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다뤄주세요.

나라가 갈 길이 먼 것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의 생각이 답답한 수준에 갇혀 있어서인 듯하다. 미국에서는 린치와 같은 극단적인 인종폭력이 일어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예가 없으므로 우리나라에는 인종차별이 없다고 적은 사람도 있었다. 차별과 박해는 그런 식으로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는 정도였다.

취향은 좋고 싫음을 가리는 나름의 기준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이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신성한 것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싫어할 권리를 달라니, 세상이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무서운 곳이었다. 차라리 동성애는 가정질서를 파괴하고 자시고 하는 교회선전식 이유를 들었으면 좋겠다. 그럼 차라리 상종않아도 된다는 확신이라도 들겠는데, 조목조목 자신의 ‘너무나 소중한 기분’을 위해 남이 누구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혐오되어야 한다는 글을 참으로 우아하게 쓰고 앉았는 것을 보니까 이 정도면 차라리 까막눈인 게 낫겠다 싶을 정도다.

몇은 ‘싫어하다’는 것이 어떻게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은 ‘중립적’인 판단인지에 대해 뱉고 있는데.. 이 ‘싫다’는 기분이 바로 차별의 가나다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차별을 논할 때,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 밖에 있는 특정 요소(성별, 성정체성, 나이, 인종 등)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그 개인이 불이익을 받을 경우 그 요소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비해 역사가 그나마 긴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이 어떤 식으로 바뀌어 왔는가를 조금만 살펴보면, ‘싫어할 권리’가 마치 남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무해한 선택이라는 오류를 범한 인종차별자와 여성차별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쉽게 볼 수 있다.

광수가 동수를 싫어하는 것은 범사회적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광수, 양수, 철수, 학수, 동수 등 모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인 현수, 윤수, 완수, 형수 등을 모두 싫어한다면 이것은 차별이 된다. ‘동성애를 싫어할 권리를 달라’는 말은 동성애자를 차별할 권리를 달라는 말과 같다. ‘동성애를 하지 않을 권리를 달라’는 것과 다른데 이 구분도 못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만약 원하는 권리가 ‘동성애를 하지 않을 권리’뿐이라면 그거야 당연히 보호해드려야 한다. ‘동성애를 싫어할 권리’ 운운하면서 속으로 원하는 게 그것뿐(동성애를 안 할 권리)이라면 그것도 보내드리겠다—단지 말 좀 안 헷갈리게 하셔야겠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그런데 ‘동성애를 싫어할 권리’라고 말하면서 마치 동성애 자체를 싫어하고 잘못되었다고 믿는 행동이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과 다른 어떤 객관적이고 정당한 태도라고 착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오류는 스스로의 신념에 의거해 (대체 어떤 신념이 그리 남 제삿상에 뭐 놔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동성애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와는 별개로 자기의 태도가 어떤 범사회적 차별에 이바지하는지 이해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Inglourious Basterds를 다시 봤는데, 폼나는 나찌 악당 Standartenführer Hans Landa가 왜 유대인을 싫어할 권리가 정당한지 설명하는 장면이 생각난다.

But if one were to determine what attributes the Jews share with a beast, it would be that of the rat. If a rat were to walk in here right now as I’m talking, would you treat it to a saucer of your delicious milk? […] I didn’t think so. You don’t like them. You don’t really know why you don’t like them. All you know is you find them repulsive. 유대인을 동물에 비견한다면 아마 쥐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제가 말하는 중에 쥐가 여기로 기어들어온다면, 맛난 우유를 대접하며 반기시겠습니까? 아니죠. 쥐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왜 싫은지 잘은 모를 수 있지만 꺼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사실 당시 독일 아리아인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은 ‘생리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쨌든 이 ‘생리적 반감’을 앞세워 결과적으로 천몇백만 명이 죽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원인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앞세운’ 식으로 그 혐오와 폭력이 작동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꼭 사람이 죽어야만 차별이냐 하면, 단지 개개인들이 개개인의 영역에서 열심히 싫어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차별이 지속되는 영역도 많고 사실 이것이 더 뿌리뽑기 힘든 차별이다. 서구 사회에서 법률에 명시된 남녀차별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직도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지위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못나서가 아니고) 그러한 개인의 범주(고용의 범주, 가족질서의 범주 등)에서 차별이 영속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반드시 드러나지는 않는 요소라는 특수성 때문에 성적 소수자에게는 이러한 개인적 범위에서의 차별이 주된 차별이 된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직업을 못 구하거나, 임금 차별을 받거나, 사회 진출권을 박탈당하거나 하는 우리가 늘 봐 왔던 친숙한 종류의 차별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끌리는 사람을 눈에 보이게 좋아하는 것과 덧붙여 그러한 성향을 주위에 드러내는 것이 금지된다. 대부분의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종류와 차원의 폭력이 아닌가. 사람 좋아하면서 좋아하는 티 못 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지 사춘기 이상은 다 아는 것 아닌가. 이러한 고통을 지속시키는 것은 이처럼 ‘싫어할 취향’을 붙잡고 남 생각 못 하는 사람들, 그것도 배울 대로 배워 놓고 그러는 사람들마저 있는 현실 때문이다.

동성애는 이해하라면서 왜 동성애 까는 것은 이해 못하냐는 생떼 쓰는 사람들이 현재 젊은이들 가운데도 많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람이 뭔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자유지만 헤게모니에 해당한 다수가 소수를 싫어할 것을 허용하기로 결의하는 것은 분명한 차별이다. 동성애는 차별받아 마땅하다는 주장이라면 내가 굳이 지적할 만한 진지함에 미달한 것이니 별 말 않겠지만, 동성애를 마음껏 싫어하게 두라면서 그러나 난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 억지라면 논리도 인도주의도 해당 사항 없는, 뇌활동도 심박수도 원활하지 못한 것이 걱정된다.

  1. 비니루

    보기 답답하던 요즘 이곳에 필요했던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2. 이카루스

    다수가 소수를 싫어한다고 묶이면서 자신이 그 대중에 포함된다고 자각하면 멈춰야 한다는 것인가요. 음.

    딱히 과거 인종차별, 여성차별의 예를 든 취지는 알겠지만, 동성애를 싫어하지만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말이 앞의 저 둘에 같이 빗대어 하는것은 오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싫어하는 대중이 행동하는 범위가 ‘만민평등’이라는 취지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제약이 걸린다는 배경이 다르다는 관점을 두고 본다면 말이죠.

    저도 동성애자들이 법적으로 제제받고 있는 현실속에 산다면 그들을 싫어한다고 표현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동성애자라고 면전에서 욕하고 때리고 하면 그게 처벌이 감해지나요?

    과거 여성인권이나 인종차별적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인 인식을 넘어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은 문제였습니다.

    패러다임이 지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기본 사상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한, 차별적 사고라는 문제는 그때와는 다른 견해로 봐야 하며 그에 따른 개인의 호불호 문제의 규제는 사회적 범주의 폭력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3. 김괜저

    정확히 어떤 문제를 제기하시는지 불분명하니 정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 대답하자면 우선, 인종적 평등과 양성평등 역시 법이 ‘특별히’ 가리켜 금지하는 것은 그것이 차별로 나타난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 두 종류의 차별만 해선 안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동성애 차별에 반하는 법이 한국에 없습니다만 동성애자라고 면전에서 욕하고 때리면 ‘동성애자라고’ 부분과 상관없이 처벌됩니다.

    저는 어떻게 행동해야 법적으로 괜찮은지에 대해 쓴 글이 아닙니다. 법 얘기가 아닌 인도주의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둘이 딱 맞지 않는다는 건 저도 슬픕니다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법도 사회적 인식도 갈 길이 멉니다.

  4. 김괜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어떻게 그를 감싸는 사람들이 말을 바꾸어 왔는지 (개인의 호불호 문제라고..) 살펴보면 그닥 다르지 않은 주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성애자에게 동성애자가 접근하는 것이 불쾌하므로 그것을 싫어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예 허무맹랑한 말은 아닙니다만, 동성애자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애정생활을 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가 훨씬 중대합니다. 다 되게 하려면 아예 따로 살게 해야 합니다만… 전자를 허용하면 후자가 죽습니다.

  5. 이카루스

    인권 문제에서 현대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전제에서는 싫어함이 차별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대중적인 싫은 시선이 사회현상으로 변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소수자가 차별로 귀결되는 것을 생각하신다면 그건 과거의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의 문제와 같은 맥락이겠지요.

    동성애자라고 면전에서 욕하고 때리면 처벌받는건 당연한 문제지만, 싫다고 말함조차 차별이라 생각되어서 무조건 동성애자를 좋아해야 된다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회적 인식이 문제라고 무조건 싫은것도 참으로 해봤자 대증요법이고, 결과론적으로 더 안좋은 쪽으로 흘러갈 문제가 될수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쪽과 좋아하는 쪽 모두 인정하는 취지에서 싫어하는 쪽의 비율을 감소시키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 아닐까 합니다.

  6. 김괜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 싫어함이 차별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건 금시초문이라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이것 때문에 제가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7. 이카루스

    싫어하다는 것에 권리라는게 붙는다는 것 자체가 웃깁니다.

    사회적 폭력에 노출되었을때 그 폭력에 대해 법이 제제를 가하는 것이 평등사상입니다.

    동성애자가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게 누가 막습니까. 다만 여자가 키작은 남자 싫어하고 남자가 못생긴 여자 싫어하는 정도로 남이 남을 싫어한다는 등의 개인의 호불호 문제를 규제한다면 그것이 안되는 것이지요.

    물론 싫어한다->싫은 행동을 한다는 정도의 인권침해 문제부터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 베이스로 깔립니다. 그런식으로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하면 법이 개입될 문제지요.

    이것이 과거 인종차별과 성차별시 평등사상에 위배된 현상도 내버려둔 당시와 지금이 다르다는 이유입니다.

  8. 이카루스

    모든사람은 평등하다 = 모두가 모두를 좋아해야만 한다는 박애주의적 명제는 아니지요.

    평등하기에 누군가를 좋아할수도, 싫어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평등하지 못한 기준속에서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한다면 차별이 발생하는 것이고요.

  9. 김괜저

    싫어하다는 것에 권리가 붙는 게 웃기다는 것은 제 제목이기도 합니다.
    지금 현실은 이미 동성애자가 자연스럽게 살 수 없는 환경입니다. 자연스럽게 살지 못하게 막는 것이 바로 이 이유 없는 호불호입니다. 부모가 싫어하고 주위 모든 이성애자들이 싫어하면 그것은 폭력입니다. 싫어하면서 싫은 행동을 어떻게 하지 않을 수 있는지… 싫어한다는 말부터 싫은 행동인 것을.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괜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동성애를 옹호하는 분들에 반박하고자 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동성애자의 삶이 어떨지 상상해 보시면 동성애 싫어한다 -> 동성애자 살기 힘들다 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직접적인 연결고리인지 느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평등사상은 마땅히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 그 자체입니다. 법이 그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는 따져 볼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동성애자로 밝힌 이가 군복무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두고 평등사상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가해지는 중입니다.

  10. 이카루스

    주위에서 싫어한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주위가 모두 싫어하지 마라! 라고 하는게 되는 겁니까?

    싫은 시선에서 벗어나서 싫은 행동에 까지 이른다면 그 폭력성에 대해서는 제기를 해야 겠지만, 싫다는 입장들을 모두 폭력적인 편견으로 갈수 있으니 넌 싫어해도 싫어한다는 니 표현을 강제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온다면 역차별에 대한 문제죠.

    제가 말한것들은 동성애자라고 해서 평등에 위배되는 행위는 위법문제이므로 처벌이 있어야 한다. 다만 동성애자에 싫어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감내해야 될 문제. 라는 취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입장이 되었다면 분명 살기 싫은 입장이겠지만, 그것에 대해 인식전환을 생각해야지 싫은걸 감추라고만 하면 뭐가 되나요.

  11. 김괜저

    의견차 잘 알았습니다.

    제가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말씀하신 그 인식전환이었는데, 그게 이런 개인적 대화를 통해 서서히 이룩되는 것이지 누군가 유엔에서 한 명 와서 선사하고 가는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설득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카루스님의 입장은 이해했습니다만 전부 그와 같은 생각이라면 이 분야에서 평등을 기대하는 것이 먼 일이라는 기존의 생각은 바뀜이 없게 되었습니다.

  12. 김괜저

    한마디만 더 하자면…

    역차별이란 단어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역차별은 사회 전체로 볼 때 남녀평등이나 인종문제에서도 쉽게 꺼내기 힘든 말인데 아직 동도 안 튼 성적취향 평등을 논하면서 역차별이라니… 아마 느끼시는 주위 동성애자의 수가 통계 추정치에 많이 못 미친다고 생각하실 텐데 왜 그런지 생각해 보십시오. 전 주위에 그러한 차별로 목숨 끊으려던 친구도 있는데 오늘은 그 친구가 고맙네요.

  13. 이카루스

    인식의 전환은 사실 좀더 어린 나이에서부터 이루어 진다거나 하는 레벨이 더 바람직 할것 같습니다.

    어렸을때 사람은 같은 성끼리도 좋아할수 있다거나…뭐 현실적으론 어렵겠지만요.

    성 소수자를 지키기 위함은 알겠지만 역차별이란 말을 쓴것은 성적 소수자를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겠다는 뜻으로 들려서 쓴 말이었습니다.

  14. 김괜저

    세대교체가 인식전환에 결정적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교육자들이 어른인 마당에 ‘그럼 언제…?’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네요.
    표현의 자유는 저도 평소에 너무나 사랑하는 자유입니다만 동성애자들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살 자유에 비하면, 특히 ‘좀 이유없이 싫음’이란 것을 표현할 자유는 좀 많이 작아 보이네요.
    완벽한 결론에 이르진 못했지만 그래도 서로 좀더 확실히 입장 이해는 한 것 같아 만족합니다.

  15. 작무

    싫어할 권리를 달라 운운하는건 이 사건이 시작된 배경이나 시작점을 보지 않고 그저 수면위로 떠오른 글 몇개만 보고 적으신거라 생각됩니다.

    문제의 싫어할 권리를 달라 운운하게된 시작은 듀게에 대한 공격이 시작점이었고, 싫어한다는것 자체로 집단적인 린치를 받는 그네들의 기괴한 문화를 까는것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동성애의 호불호에 관한 문제로 물갈이 되더군요.

    좋다는걸 까지도 않고 싫다는걸 까지도 않은 상황에서 누가 권리를 찾겠습니까만은 서로 까이니 권리 운운하는게 아니겠습니까.

  16. 김괜저

    듀게 문제로 시작된 말인 것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네들의 기괴한 문화 안의 문제라면야 신경쓰지 않겠습니다만 이제 말씀하신대로 동성애 자체의 ‘호불호’를 논하는 분위기가 되었기에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이 ‘싫다는 것’이 생각보다 개인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 ‘싫어할 권리를 달라’고 운운하는 것은 글 내용과 반대라는 정도는 읽으셨겠지요?

  17. 빌리밥

    굳이 동성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 가운데 싫어하는 면이 있고 좋아하는 면이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 싫은 감정을 터부시 하는 것 자체가 음지로 향하는 첫걸음이 아닌지 싶습니다. 사람들이 여기서 싫어한다는 건 혐오한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다른 면과 동등하게 바라보는 관점에서 싫어한다는 것이지, 그것이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면 그 자체로서 이미 인권적 측면을 침범한 꼴이 되기에 사회적 문제가 됩니다. 공적인 영역을 사적인 영역에까지 끌고 들어온다면 성경에 나오는 만인에 대한 사랑과 모든 이를 좋아하는 성자, 성모가 될 수 밖에 없겠죠. 친구들 사이에서도 싫은건 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금기시하고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 건강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시됩니다.

    그리고 애초부터 ‘혐오해서는 안된다’ 가 아니라 ‘싫어해서는 안된다’ 라고 혼동해서 표현하며 강제했기에 그 반대로, 싫어할 ‘권리’란 표현이 나왔을 뿐입니다.

  18. 김괜저

    논지는 알겠습니다만, 동성애 자체가 얼마나 금기시되는지, 얼마나 음지에 처박혀 있는지 생각해 보신다면, 그에 비교할 때 그것을 (얼마나 무해하게던간에) 싫어하는 것은 아주 폭넓게 허용되어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지 않나요? 여자도 싫어할 수 있고 흑인도 싫어할 수 있습니다만 차별적 현실을 생각하면 개인적으로 싫어할 수도 있는 자유를 이렇게까지 찾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KKK와 같은 단체들이 ‘흑인을 싫어할 권리’를 원합니다). 싫어하는 것, 혐오하는 것, 혐오를 표현하는 것, 혐오에서 우러난 행동을 하는 것, 강도는 다르지만 방향이 같습니다.

  19. 빌리밥

    개인적으로는 동성애건 이성애건 모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 뿐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감정조차 그래서는 안된다는 식의 표현이나 생각 자체가 싫었을 뿐입니다. 물론 동성애에 대해 올바르게 알릴 수 있는 사회적 노력 또한 필요하겠죠.

  20. 김괜저

    덧붙이자면, 동성애를 온전히 공적인 영역에서만 바라보신다면 차별의 실체를 다 파악하지 못하고 계신 겁니다. 차별은 사적인 곳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이 공론화될 때 공역에 들어오는 것 뿐입니다 (특히 대인관계로 정의되는 성정체성 문제는).

  21. 빌리밥

    그 부분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뭉퉁거려서 싫어하는 감정이 혐오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차단해야 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뿐입니다. 위에서 예로 제시한 유대인 문제는 그 과정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치에서 건드리고 이용하는 측면이나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않으려 했던 독일 대중의 모습에서 문제를 찾아야지 단순히 싫어했던 감정 자체를 문제시 삼는건 실타래만 꼬이게 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KKK 단체는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을 싫어했다기 보다는 혐오와 우월주의에 가까웠고 이를 폭력으로 연결지었기에 문제가 된겁니다. dislike와 hate은 분명 다른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논의의 시작에 있어서 카테고리의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근원적인 해결책은 찾기가 어려울 따름입니다. 하나가 풀리면 하나가 꼬이는 식으로 말이죠.

  22. 김괜저

    그런 의도셨군요. 하지만… 이 문제를 거의 준전공으로 공부하면서 항상 부딪히는 부분이 ‘이성애자들의 설명 못 할 거부감’인데, 이 거부감이 자연적, 생물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 역사적이라는 것이 사회학 쪽의 견해입니다. 그런 이유로 ‘설명 못할’ 반유대인주의를 예로 들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동성애자를 나름 개인적으로 싫어하고 그걸 자연스런 감정이기 때문에 억제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이 모여서 반동성애적 사회적 분위기가 됩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너무 오래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 좋아하는 것일 뿐 별 차이가 없다고 정확하게 말씀하셨는데, 두 좋아하는 방법이 얼마나 사회적인 차이가 있는지 생각하면 ‘그건 당연히 평등한 거니까…’라고 하기엔 이르지 않을까요.

  23. 김괜저

    dislike와 hate은 생각하시는 것처럼 먼 단어가 아닙니다. 제 글은 ‘싫어하다’를 얼마나 착하게 포장해서 정의하는지와 관계없는 글입니다.

  24. 빌리밥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이라 덧붙였던 겁니다. 사회에서는 아직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쪽이 주류인 탓도 있구요. 마이너가 대중을 상대로 설득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시키려 할 때는 강하게 반박하고 그들을 설득시키려 하기 보다는 최대한 그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그리고 장기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전략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반박당하지 않도록 명확한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하죠. 차별받는 마이너 집단이 과격하게 나가봤자 돌아오는 건 비난과 멸시 뿐입니다. 그 거부감이 왜 생기는지 파악하지 않고 단순히 그 거부감은 잘못된거라 한다면 당연히 반발이 일 수 밖에 없죠.

  25. 김괜저

    천천히 장기적으로,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듀게’ 문제가 그랬듯, 정작 동성애자들 스스로는 그닥 과격하게든 소극적으로든 별 목소리를 못 내고 있을 정도로 사회적 반감이 거센 것이 현실입니다. (대신 몇몇 사람들이 아직 동성애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다수를 깔보고 마치 우월한 입장인 양 하고 있는 것에서 불씨가 붙었죠) 계속 인종과 성차별을 들먹거려서 죄송스럽습니다만, 미국에서 흑인인권과 세계적으로 여성인권도 흑인들과 여성들이 팔벗고 나서 설득해서 획득된 것이 아니라 생각 맞는 다수 쪽의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제가 글 쓴 이유가 바로 빌리밥님이 말씀하신 장기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입니다.

  26. 오리지날U

    인도주의 차원에서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지 마라,고 하는 건 괜찮은 겁니까?

    저는 이 논리야말로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죠.

    예로 드신 동성애자들이야 분명히 사회적 소수가 분명하지만, 만약 그 소수와 다수가 바뀐다면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때도 역시 인도주의 차원이 되는 건가요? 갸우뚱~하네요 저는.

    꽤 많은 이들이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착각하고 있는데, 왜 그게 폭력이라는 걸 모를까요.. 안타깝습니다.

  27. 김괜저

    싫어하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피해를 입으니 싫어하지 말자고 하는 것이 인도주의 이치에 맞습니다만 그걸 떠나서, 싫어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싫어하면서 그것이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수와 다수가 바뀌어서 동성애가 사랑의 기본적인 방식이 되고 이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인 반감에 부딪힌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성애를 싫어하지 마십시오 라고 얘기하겠습니다.

  28. 오리지날U

    아니, 그런데 다들 싫어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 그래서 적은 글이고.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말라,라는 것도 좀 웃겨요.

    제가 쓴 글 http://ucsnz.egloos.com/2800000 에서 오이 얘기를 좀 했는데..

    오이를 싫어하면 오이가 차별 받게 되는 겁니까? ‘당근은 괜찮지만 오이 너는 하등한 채소야 !’가 되는 거냐구요?

    물론, 동성애자들 같은 경우는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지금 말하는 요지가 그게 아니란 거 아시잖습니까.

    동성애자 배려합니다. 차별하지도 않고, 야리꾸리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고, 심지어는 게이가 저더러 한 번 같이 자자고 했을 때도

    저는 불쾌함보다 ‘얼마나 동침 상대 구하기 힘들까..’하는 측은함이 먼저 들었던 사람입니다. 생면부지인데 커피도 사줬습니다 -_-

    근데 전 동성애 싫어요. 측은한 건 측은한 거고, 커피 사준 건 커피 사준 거고, 싫단 말입니다.

    거기다 대고 싫어하지 말라니까 !..라고 하는 게 폭력이라는 거죠, 제 말은.

    왜 순수한 제 감정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더 나아가서는 그걸 강요하냔 말이죠.

    정말로 인도적인 차원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요.

    소수와 다수 얘기도 살짝 잘못 짚으셨는데.. 바뀐다고 동성애가 기본적 방식이 된다는 가정은 아닙니다.

    단지 물리적인 숫자가 뒤바뀌었을 때도 그 논리가 가능한지 그걸 물은 겁니다.

    이를테면 동성애자 집단에 이성애자 개인 몇몇이 포함되었을 경우라던가.. 뭐 그런 케이스요.

  29. 김괜저

    아, 개인적인 상황에서 동성애자가 다수인 경우요?
    당연히 동성애자의 생각이 강요된다면 폭력이지요.
    그러나 사회를 봅시다.

    오이를 다들 싫어해서 요리에서 아무도 오이 안 써주면 차별이 맞겠죠…. 제 말은, 개인 스스로는 개인의 자유에 입각하여 싫어한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합쳐지면 폭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싫어하지 말라고 하는 게 폭력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불공평하게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하게 내버려 두라고 하는 것보다 그 싫어하는 감정을 지킬 자유가 그들이 겪는 더 큰 폭력에 비하면 좀 참을 만 하지 않냐는 말입니다.

    그 게이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신 것은 환영합니다만… 그 다음 몇 글에 ‘근데 싫어요 싫단 말입니다’가 본심이시면 그게 얼마나 의미 있는 배려고 평등입니까. 동성애자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막는 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주위 시선 때문입니다. 그 주위 시선은 전체를 일컫는 말인데 개인개인에게 조준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스스로 전체의 일부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습니다.

  30. 오리지날U

    댓글이 길어질 수록 점점 답답해지는군요; 아마 괜저님도 저랑 같은 기분이시겠죠..

    자, 봅시다.

    그래서 오이가 요리에 쓰이지 않느냐? 아니죠? 오이든 뭐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에선가 재료로 쓰일 겁니다.

    전 오이가 싫어요. 그래서 오이를 안 써요. 그런데 누군가는 오이를 좋아해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오이를 쓸 겁니다. 간단하죠?

    여기서 그냥 단순비교로 오이를 동성애라 칩시다 (약간 무리라는 건 알지만 일단 써봅니다)

    전 동성애(오이) 싫어요. 그래서 동성애(오이) 취급 안 해요. 근데 누군가 동성애(오이) 좋아해요. 그 사람은 동성애(오이) 활용해요.

    자, 뭐가 문제죠? 아직도 동성애(오이)를 싫어함이 차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차별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큰 문제군요 -_-; 싫어서 취급 안 하는 게 차별이라 생각하신다면 말이에요.

    동성애자가 소수인 이유는 동성애(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보다 적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래서 요리에 덜 쓰이는 것이구요. 근데 적게 쓰이니 인도주의 차원에서 싫어하지 말라?? 말이 됩니까, 이게?

    윗 답글처럼 소수와 다수가 바뀌었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오이가 기본적인 방식이 되면 ‘당근 싫어하지 마십시오’라고 얘기한다라?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한 이유도 [싫어함이 반드시 차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전 진심으로 그 분을 배려했고, 앞으로도 동성애자를 만나면 그럴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제 맘이 바뀌진 않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그게 의미있는 배려냐’라고 물을 수가 있나요? ㅎㅎ; 아, 진짜 이 부분에선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

    끝으로 [내가 겪는 폭력에 비하면 너는 참을 만한 것]이라는 부분도 아주 틀린 생각인 듯합니다.

    내가 겪는 폭력은 99인데 넌 72니까 참어. 말이 되나요, 이게?

    인도주의 차원에서 소수가 겪는 폭력을 위해 다수가 겪는 폭력은 감수해야 된다,란 표현이 정말 희한하게 보입니다. 제 눈엔.

    그냥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전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자꾸 억지로 갖다 붙이시는 것 같아요.

    아니, 대체 왜 ! 싫은 걸 싫다고 말하면 안 되는 겁니까. 제 소신을 밝히는데 그 대상이 소수라는 이유로 제가 감내해야 되는 겁니까?

    왜 그래야 하죠? 뭣땜에? 싫은 건 싫은 거고, 배려하는 건 배려하는 거라니까요?

    만약 싫어하는 동시에 이유없이 불이익을 주는 경우라면야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죠. 물론입니다.

    근데 지금 오가는 말들을 보아하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소수를 위해 다수가 억압당해야 할 이유, 전혀 없습니다.

    그건 아까부터 말하지만 바로 그 소수와 다수를 뒤집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문제에요.

    누구든 싫은 건 싫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특히나 그것이 어떤 사건이나 대상으로부터 발현된 것이라면 더더욱이요.

    더불어 그 누구도 개인이 호불호를 밝히는데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권리는 없습니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쪽이라 할 지라도 행위에 의한 정당한 처벌은 받되,

    ‘그건 틀린 것이니 내 말대로 해’ 따위의 타인의 의사가 개입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31. 김괜저

    그거야 오이라는 부적합한 예에 맞는 게 ‘요리에 쓰인다’ 뿐이었기 때문에 무리수 뒀습니다. 그러나 예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인 사람을 개인적 이유를 들어 싫다 하면 본인의 가족, 친구들에게 상처로 작용하고 그것이 바로 동성애자들이 주로 겪는 차별(동성애자임을 밝히지 못함)입니다.

    그리고 싫은 걸 싫다고 못 말해서 겪는 폭력이 72고 동성애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폭력이 99 쯤으로 생각하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 비교가 안 될 뿐 아니라, 이성애자들의 싫음을 말할 권리를 인정하면 바로 동성애자들의 피해로 이어지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체 원하시는 게 뭐죠? 말도없이 일기에 ‘난 동성애 싫다’고 쓰고 혼자만 볼 권리?) 동성애자들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서 이성애자들에게 피해가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정녕 비교할 수 없는 양쪽을 마치 페어게임처럼 표현하시니 얘기가 겉돕니다.

    다수가 감 놓는 것 때문에 소수가 고통 속에 사는 분위기이기에 대추 좀 놔 달라고 하는 겁니다.

    오리지날 U님이 만나신 게이에게 잘 대하신 것은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만, 동성애 혐오증의 경우 남보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위력을 발휘합니다.

  32. 오리지날U

    ‘동성애’와 ‘동성애자’라는 전제 때문에 지금 의견 개진에 혼란이 오는 것 같은데..

    제가 말하는 것은 동성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싫고 좋음을 표현할 자유’가 중심입니다.

    간단하게 입장을 바꿔서 동성애자가 무언가를 싫다고 표현한다는 가정을 해봅시다.

    그런데 그에 반하는 무리들이 ‘그건 싫다고 말하면 안 돼, 너 배려심이 부족하구나’라고 강요한다면? 자, 어떻습니까?

    이걸로는 삘이 팍~ 오지 않나요? 그렇다면..

    동성애자 A가 ‘난 곤충을 존중해. 그렇지만 사마귀는 싫더라’라고 한다면?

    인도주의 차원에서 사마귀를 싫어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할 겁니까? 어째야 하나요? 동성애자 A가 싫다는데?

    인류에 비해 억압받고, 쉽게 부서지는 약자이니 동성애자 A가 좀 불편해도 참아야 합니까?

    여기서 동성애자 A가 받는 폭력은 72라 하고, 사마귀가 받는 폭력은 99라 칩시다. 괜저님이 제 비유를 받아들인 방식 그대로.

  33. 김괜저

    오리지날U님과 제 의견이 이렇게 갈리는 이유는 중요한 부분이 뭔지를 다르게 판단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오리지날U님께서 호오를 말할 표현의 자유에 중점을 두고 그것이 위협받는 듯한 맥락을 비판하시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동성애 혐오증은 호오의 문제로 치부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에게 차별이란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혐오 섞인 시선을 알기에 스스로에게 자연스러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사실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리지날U님을 비롯한 개개인들이 동성애에 가지는 반감을 억지로 사회가 억누르고 외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종차별이 좋거나 싫다’ ‘만인 평등이 좋거나 싫다’가 단순한 호오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특히 큰 책임 따르지 않는 온라인 상에서 특정집단의 정체성을 싫어하는 것이 정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반길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개개인은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우리 각자는 좋고 싫은 것을 내키는 대로 표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개인일 수 있지만, 반드시 주위 누군가에게는 반응이 두려워 성향을 고백하지 못하는 소중한 지인 친구 또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서 오리지날U님의 반대에 서 있는 사람들이 꼭 사사로운 의견을 말할 권리도 모르는 막무가내는 아니라는 정도는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34. 글 잘 쓰셨는데 혹시 게이세요?

    암튼 되게 잘썼다…

    보면서 좀 설득당했음. 왜냐면 나는 여자니깐… 이해가 확 옵디다 ㅇㅇ

    난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 억지라면 논리도 인도주의도 해당 사항 없는, 뇌활동도 심박수도 원활하지 못한 것이 걱정된다.

    다만 정말 나 글 잘 쓴다 어때? 좀 하지? 이럴려고 올린거 아니라면

    진짜 설득하려고 올린거라면 이구절은 지우는게 어떨지…

    음 그렇군 하고 끄떡끄떡하다가 뭔가 아 짜증 잘났네 원활하지 못해서 죄송하네요 이런 밥맛..소리가 절로 나오더라니까요

    미안. ^-^

  35. 가로등

    이오공감에 올라왔던 많은 난투극-_-을 보고 났지만

    이 글을 보고 나니 정리되는 느낌이네요.

    글솜씨가 없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명확히 정리하지 못했었는데

    김괜저님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36. hislove

    “나 저런 성격 싫어” 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37. 김괜저

    별 생각 없습니다.

  38. hislove

    그럼 모순이군요.

    저는 동성애를 하나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그 성격 싫어해요. 끝.

  39. J H Lee

    님이 말씀하시는 성격은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코드의 연결이라고 비유한다면, 성격이라는 것은 코드의 접촉부분의 모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맞는 코드를 억지로 끼워 맞추려면 어느 한쪽, 혹은 양쪽 모두가 망가지게 됩니다. 실직적으로 물질적 비물질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반면 성적 취향은 그것하고는 관계가 없죠.

  40. hislove

    관계가 있습니다.

    성격이란 다분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그리고 저는 성적 기호 역시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영역이라 판단하며, 그것이 “계층논리”로 격상되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동성애자 뿐 아니라 동성애 혐오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봅니다.

  41. J H Lee

    제가 말했다시피 성격이라는 부분은 실질적으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성격에 대한 호오는 자기방어를 위한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성적 기호가 일상 생활에서 어디서 충돌하나요?

  42. hislove

    첨언하자면, 한 기업의 사장이 한 직원의 성격을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핑계로 같은 일을 하는데 차별적으로 대우할 수는 없지요.

  43. hislove

    모든 성격이 충돌하는 것은 아니며, “충돌하지 않는 성격 역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후자가 중요하죠.

  44. 김괜저

    모순 아니고 성격 아니에요.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으니 단순한 성격으로 치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를 없애려고 애쓰시는데 계층문제 맞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말 많은 성격을 싫어해서 말 많은 성격인 사람들이 말 없는 척 숨어 살아야 하고 말 많은 성격에 자연스러운 생활양식을 누리지 못하도록 강요당한다면 그것도 계층문제이겠습니다.

  45. hislove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고 해서 개인적인 영역에서까지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46. hislove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차별당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지,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까지 억제하라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차별에 다름 아닙니다.

    싫어하는 감정이 사회적인 차별을 유발하지만 않으면 되는 문제를, 싫어하는 감정 자체를 배제하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47. J H Lee

    충돌하지 않는 성격을 증오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예를 들어 소극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의 접근이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소극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사람과 성격이란는 코드가 맞지 않아서 꺼릴 수도 있습니다.

    역으로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이 답답해서 싫을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종교적인 접근이나 성적인 접근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그런 접근이 싫을 것 입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이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물론 동성애자 중에도 성적인 접근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건 성격의 문제지 성적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48. 김괜저

    그럼 다음에는 사회한테 가서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가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 취향이 차별 분명히 유도합니다. 그렇다는 것이 제 글의 큰 줄거리입니다만 그것에 그렇게까지 반대하시면 설득할 재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취향, 반드시 차별을 유도합니다. 유도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에게 차별이란 주위의 시선이지 동성애 금지법이 아닙니다.

  49. hislove

    저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라도 반례가 있는 이상, 일반화는 불가능합니다.

  50. hislove

    J H Lee//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여, 실재하는 현상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51. hislove

    첨언하자면, 저는 “사회적인 영역에서라면” 동성 혼인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여러 가지 제도적인 보호장치를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데에 세금을 사용한다고 해도 불평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인 영역에서” 나 자신은 동성애를 싫어합니다. 끝.

  52. 김괜저

    만족스럽지 못한 곳에서 끝을 내리시니 저도 찝찝하지만 그만하겠습니다.
    hislove님이 누굴 차별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 차별 없는 싫어함이라면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난 싫어, 난 싫어’ 표현하면서 아무도 상처받지 않으리라고 가정하지 마십시오.

  53. hislove

    걱정하지 않으셔도 이 부적절한 논리의 글이 아니었다면 이런 말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54. 김괜저

    참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거꾸로 날리시면서 마무리하려 하시니 닫을 수가 없군요…
    hislove님은 동성애를 성격으로 생각하고 계시고, 저는 그것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의 차이 때문에 벌어진 틈이라고 해 두고 접지요. 저는 상처주는 사람 보다는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쓴 글일 뿐입니다. 사회가 개인 밖의 것이라는 생각도 강하신 것 같은데 그것보다 부적절한 논리는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55. hislove

    사회가 개인 밖의 영역이라고 단 한 마디도 한 적 없습니다만.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시라면 말입니다.

    저는 동성애를 싫어하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않고 평범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저 같은 사람들을 싸잡아서 죄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부적절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으시군요.

  56. 김괜저

    죄인으로 안 만들었습니다.
    입 밖으로 안 내시는 이유는 차별로 이어지기 때문임을 이해하고 계시기 때문인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입 밖으로 내건 안 내건 차별이랑 관계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글입니다. 만약 이 조준을 오해해서 성나신 거라면 분명히 하겠습니다.

  57. hislove

    막말하는 성격의 사람이 상대방을 상처입히는 기저가 상대방을 “차별해서”는 아닐 것입니다.

    저는 제 말로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그것이 “차별이라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58. 김괜저

    아, 그럼 차별이 뭔지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서 문제였군요. 저는 그 상처주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표현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차별로 이어진다는 요지였습니다. 동성애자가 차별을 느끼는 건 밖에 나가서가 아니라 집안에서 또 친구들 사이에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hislove님께서 주위 사람들을 걱정해서 난 동성애 싫다는 생각을 굳이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면 실생활에서는 저와 대충 비슷한 입장이신 것입니다. 말씀 나눠보니까 그닥 동성애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거나 하신 분이 아니신데 왜 화가 나신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네요.

  59. hislove

    <싫어할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글의 요지가 그렇다고 하시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

    본인의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심이 어떨까요.

  60. 김괜저

    와…. 마지막 문단 잘 한번 읽어보세요.
    <싫어할 권리>는 예, 맞습니다,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지금 hislove님께 드린 얘기처럼 싫어하다=>차별 로 이어지기 때문에 싫어할 권리를 부정한다는 겁니다.
    차별하겠다는 권리도 지키고 싶으신 것이라면 할 말 없습니다.

  61. hislove

    그럼 이 글은 “쓸 필요가 없는” 글이군요.

    듀나 게시판에서 촉발된 논쟁에서 “나는 동성애가 싫다”에 동의한 사람들은 대부분 저랑 같은 포지션이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이 씌어졌길래 전 뭔가 다른 주장(=듀게에서 일부가 주장하는 <싫어할 권리조차 악이다>)인가 싶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모순 어쩌고 강하게 나갔던 이유이기도 하지요.

  62. 김괜저

    저는 제 주장이 제 글 안에 있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다른 글 보다 오셔서 이 글에 없는 얘기까지 들어 항의하시니 당황했습니다.
    “쓸 필요가 없는 글” 분명히 욕인데 다른 말씀에 비하면 제일 듣기 좋네요. 쓸 필요 있는 글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

  63. 김괜저

    그리고 싫어할 권리가 차별할 권리이니 차별이 악이라면 싫어할 권리는 악에 대한 권리인 것은 맞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만 싫어하시고 세상에서 좋아하시는 것들에 집중하시길 빕니다.

  64. hislove

    1. “혐오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제 입장엔 변화가 없습니다.

    2. 이야기 자체가 어쩐지 꼬인 위치에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65. 김괜저

    별로 꼬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의견차가 크고 결정적일 뿐이네요. 저는 혐오가 차별로 이어진다고 고수합니다. 그럼 이만..

  66. ㅏㅏㅜㅇ

    좋아하지않는다 와 싫다 의 차이란게 참 미묘하네요

    그렇다고 모든걸 좋아할수는 없는일이니..

  67. 김괜저

    제 입장은 그게 얼마나 미묘하던간에 동성애자 평등에는 도움 안 되는 태도라는 말이었습니다. 모든 걸 좋아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이상 싫다 싫다 표현하는 것은 분명 결과로 이어지지요..

    요새 미국 쪽에서 동성 결혼법 통과를 원하는 사람들은 ‘동성 결혼에 반대하면 동성 결혼 하지 마세요’라는 구호를 쓰고 있습니다.

  68. 에인샤르

    글의 마지막 문구에 대한 우려가 있는 이유는 요전에 있었던 예의와 가식에 관한 혈투에서 나왔던 예시문으로,

    ‘차분하고 논리적이며, 경어체지만 그 의미는 욕과 다를바 없다’로 분류된 표현방식이라서 입니다

  69. 김괜저

    그런 혈투가 있었는지 몰랐네요. 정리하고 설득하기 위한 글이라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저기서 규정한 ‘억지를 부린다면’을 붙여 욕 가깝게 한 의미 자체가 크게 입장과 다르지는 않고 제가 쓴 글 수정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두겠습니다. 저것에 기분 상하신 분이라면 댓글도 읽고 오해 없으셨으면 하는 희망이네요. 우려 감사합니다.

  70. 그냥

    동성애를 싫어한다 동성애를 차별한다란 말과 홀로코스트라는 말이 결합되니 최근에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나는군요. 제노사이드에 관한 책인데 워낙 기억력이 안 좋은지라 구체적인 나라 이름은 잘 기억 안 나고… 어쨌든 거기 나오는 인권단체가 왜 군부와 그 하수인들에게 정적들을 죽였냐고 따져 물었더니 거기 고위 장교들이 그러거든요. 자긴 죽이라고 그런 적 없다. 자신은 그냥 “제거”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죽인다는 것과 제거하라는 말은 다른 것이다, 라고 말이에요…

  71. 김괜저

    물론 죽이는 것과 때리는 것, 꼬집는 것… 정말 다른 폭력입니다만 폭력임은 같지요. 다들 ‘난 직접 행동하지 않을 정도로만 싫어해’라는 말을 왜 그렇게 방어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72. 안녕밍키

    ‘다구리’는 참 다 구리죠. 하하.

    네이버에서 이글루스로 넘어 오면서, 논리적으로나 사회적인 인식의 프로세스가 저랑 맞거나 저보다 몇 수 위에 있는 분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원문 자체에 정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싶네요.

    아직 긴 세월을 살아온건 아니라서 인간이 적어도 ‘윤리’라는 범주안에서 가지고 있는 생각만큼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끔 보면 저랑은 프로세스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 놀라게 됩니다. 아마 집필 하신 부분에 관해서도 누군가는 전혀 동감하지 못 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특히나 일반적으로 교육받는 부분의 것은 자신이 원하던 원치 않던 나름의 윤리의 범주의 외각에라도 자리하는 반면에, 성적 소수자에 관한 부분은 우리나라 의무교육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죠. 그런면에서 성적 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과 성적 소수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극단적인 이분법이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교육받지 않는 분야 대해, 오롯이 홀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람이니까요.

  73. 신☆치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74. 싫어한다는 표현을 일절 않더라도 싫어할 수도 없는거에여?

    그건 좀 너무한 거 같은데

  75. 김괜저

    싫어할 수 없다고 안 했습니다. 싫어하는 게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 알고 조심해서 싫어하십시오.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동성애에 연류되고 싶지 않은 정도의 마음을 ‘싫음’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76. 그런 거라면 난 동성애 안 싫어해요.

    사실 ‘난 동성애에 연류되고 싶지 않다’ 라고 일일이 길게 늘여쓰기 힘드니까 단순하게 싫다고들 하는 거겠죠.

    전 직접 동성애를 하는 것 이외의 범위라면 다른 건 협조적으로 나올 생각이고요.

    제 친구나 친지가 게이라고 해서 욕할 생각도 없고 가능하면 격려해주고 싶어요.

    게이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는 것도 제가 힘닿는 범위라면 도울 수 있으면 좋겠고요.

    제가 보기엔 ‘나 좀 싫어하게 해 줘’ 라고 말하는 분들 대부분이 이런 입장이신 것 같구

    윗 글대로 이걸 단순히 ‘싫다’로 표현하는 게 서로 엇갈리는 것 같네요.

  77. 김괜저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전 글에 분명히 ‘동성애를 하지 않을 권리’는 온 몸으로 보호해 마땅하다고 썼습니다. 그래서 이 차이에 대한 제 입장이 이해된 것으로 알았지요. ㅂ 님의 전반적인 생각은 제가 생각하는 바른 태도와 일치합니다. 표현의 차이입니다.

  78. 김괜저

    보통 ‘동성애에 연류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냥 ‘난 이성애자다’라는 말로 쉽게 할 수 있는 거라 왜 ‘동성애가 싫다’로 부정확하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79. black_H

    이 리플 모음이 바로 김괜저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예인데….
    참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이 혐오하는 대상을 ‘싫어할 권리(더 나아가서 의무)’를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난리도 아니군요…

    언제부터 인간군상이 싫어하는 행동과 감정을 서로 분리해서 잘 처신했답니까…
    사회 대다수가 싫어하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차별과 불이익이 오게 됩니다.

    이 사회 구성원들은 이러한 불이익이 자신과 관련이 없으면 옳은것이죠…

    별 시덥잖은 이유로 마녀라고 낙인찍어서 죽이면 안된다는걸 몸소 역사에서 본 인류가 신체적 차이를 혐오하여 차별하는 것은 나쁜게 아니라는 아주 이차원적이고 유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 보면 아직 한국사회라는 것은 100년은 더 성숙해야 할것 같습니다.

  80. 행동과 감정을 분리 못하는 건 사장이 싫어하는 사원 승진 안 시켜주는 것과 같은 덜 성숙한 인간상 같네요.

    그리고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동성애는 존중받지 못해요. 물론 그게 올바르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굳이 한국사회만 싸잡아 욕하는 건 우스운 일 아닐까요.

  81. 김괜저

    뭐 한국사회로 얘기하시긴 했지만 한국사회’만’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으니까 딱히 오류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외국이야 어디냐에따라 많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인권’운운하며 챙기고 사는 나라들 중 우리나라만큼 동성애자로 제대로 사는 사람이 많지 못한 곳도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82. black_H

    적어도 서구사회의 집단지성은 ‘개인의 신체적 차이점을 혐오(혐오도 싫어한다는 표현의 일종입니다)하거나 차별해서는 아니된다’ 로 귀결되죠…
    정도의 차이는 있는법이죠.

    최소한 옳지못하다는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83.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잘 몰라서 우리나라와 어느 정도 다른 지 잘 몰랐네요;

    이건 제 공부부족이고 실수 맞아요.

  84. JK

    폭력에도 똘레랑스를 달라는 소리지요..
    이 논쟁들을 보면서 1차대전을 전후해서의 독일에서의 유대인 문제가 자꾸 떠오르네요..

  85. 동성애는 싫어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권리를 붙인다면 동성애를 차별하겠다라는 뉘앙스로 들립니다. 그냥 생각하는 데에도 권리가 필요한가요.. 권리는 남을 대할때, 무언가를 요구할때, 힘을 행사할때 쓰는 말이 아닌지요. 주인장님 말씀대로 동성애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법이 아닌 주위의 시선이라면, 속으로 싫다해도 그들을 배려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갑니다.

  86. 그런데 제가 보기엔 동성애 논란에 휘말린 사람들 대부분이 다 같은 입장인 거 같아요.

    ‘내가 동성애할 생각은 없지만 남들이 동성애하는 것에 욕하지 않을 것이다’ 정도인 거 같은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동성애할 생각이 없다’는 ‘난 동성애가 싫다’로 말하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난 동성애가 싫다’가 ‘난 동성애하는 걸 보면 욕을 할 것이다’ 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87. 그래서 ‘동성애를 싫어하면 안 된다’ 식의 글이 올라오고 ‘싫어할 수도 없냐’ 같은 얘기가 나오는 거 같구요.

    결국 ‘싫다’는 단어를 각자 입맛대로 해석해서 이렇게 난리가 나는 거 같네요

  88. BBB

    자신이 그 대상으로 인해 받는 혐오감을 공공연히 떠벌리고 다니면서, 물리적, 정신적 피해 및 불이익을 줄때(승진이라든가, 고용이라든가, 식당에서 주문후 대기시간이라든가) 그 때가 문제가 되는거지, 혼자 닥치고 있음 소송도 안걸리고 아무것도 없는 것 아닌가요. 싫어…가 어디까지의 싫어인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89. 김괜저

    저도 ‘싫어’가 얼마나 여러가지일 수 있는지를 앎에도 이렇게 입장 고수하는 이유는…
    동성애자에게는 막연한 반감도 그의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서 느껴질 때에는 큰 중압감이 된다는 것을 수 차례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승진이라던가 고용이라던가에서 동성애라고 핍박받는 경우는 아직 (동성애자들이 음지에 주로 있으므로) 드뭅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학창시절 친구들을 잃는 등의 안타까운 경우(전자의 경우 경제적 불이익으로도 이어집니다)는 많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이 싫다는 느낌을 마음 속에만 간직하겠다는 분들이 본인의 친구, 형제, 자녀, 또는 부모가 동성애자임을 밝혀올 경우 그들로 하여금 ‘나는 동성애자라서 이 사람을 잃어야 하는구나’라는 느낌 들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90. 한결

    It is quite intriguing to see this rhetoric of rights so readily incorporated when it comes to collectivized hate. Observation tells us that the phrase ‘I have the right to’ stands for ‘it is against decency to condemn me for wanting to’. So it follows: I have the right to hate fat women and short men for they look repulsive; I have the right to hate the Pakistan immigrant workers for they steal our jobs and bother our women; I have the right to hate the Jehovah’s Witnesses for they evade military duties and upset the national mind; I have the right to hate the black people because — imagine a Southern father delivering a short but lethal verdict just before drawing his hunting rifle at a black man his daughter is dating — well, because they are black. Henceforth, I reserve the right to speak out my hate, for that is also one of the enumerated rights, and those who listen reserve the right to listen and to be moved, and to organize and to take up actions. I like what I like and would like to keep them; I hate what I hate and would love to be rid of them.

    They say that they do not oppose homosexuality in principle, that maybe it’s even quite decorous to have them protected, but only as long as they remain within the vagueness. Yes, subtlety is always appreciated, for there is absolutely no need to flaunt about their sexuality. So there are two things that are in work here. The first is the well disproven yet understandably unfaltering belief that speech is harmless, and that it is separable from actual action. The second is the acceptance of otherness which never fails to stop at a safe distance. Diversity sounds nice and pluralistic society sounds like something enjoyable, but it’s only as long as those others are comprehensible, containable and ultimately controllable. The politically correct citizens of the present times are always ready to throw out their arms in good will and claim: “Whoa, I don’t mean to offend you. It’s just my personal opinion. I mean no harm, nor do I mean to say that it should be how we all think,” when in fact ‘we’ simply consists of multiple ‘I’s.

    I have no knowing of how and where this apparent debate on Egloos started. Someone has mentioned ‘듀게’, and I don’t know what that is, nor do I have any grasp of their ‘deplorable customs’. But in any case, we must ask, deplorable by whose standards? Of course, of those who find no shame in preaching: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에요. 모두에겐 자유와 권리가 있는 거죠. 가끔은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어요. 그렇더라도 언제나 열린 마음을 가집시다. 그래, 남자가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죠. 외국인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죠? 다른 종교도 존중해 줘야 해요. 그리고… 잠깐, 거기까지. 조금만 더 다가오면 쏜다.”

    p.s. Is this not the very crowd who’d gone berserk over ‘루저녀’ whose only fault is having exercised her right to speech on national television?
    p.p.s. 써놓고 보니까 이거 왜 이렇게 길어… 아무도 안 읽을텐데 ㄱ-

  91. 김괜저

    Precise and coherent. Check plus.

  92. coneco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덧덧글도요.

  93. 돌멩이

    자세히 알아야만 그들의 입장을 온전히 알게 되고 그러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는 없게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음과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과거에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일이라면 쉽게 피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개인의 취향? 선택? 신자유주의 덕택에 별의별 자유와 권리가 다 생겨나는 것 같네요. winner takes all의 세계에서 소수자들은 이해받지도 동감되지도 못한 채 배제되고 마니까. 글 잘 읽었습니다.

  94.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95. 김괜저

    마지막 지우라는 의견 먼저 좀 말씀해주시지… 다들 본 거 지우긴 그래서 다음에 꼭 참고할께요.

  96. 딜런

    위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척 하면서 이래저래 자기의 혐오가 정당하다는 듯이 고매한 척 하는 사람들 진짜 안쓰러울 지경이네요. 어쩜 저리 타인에 대한 혐오를 당당하게 표현할 수가 있는지… 쯧쯧…

  97. 행인

    지금봐도 좋은 글입니다.
    거의 10년전이라 말할 수 있는 오래전 기간인데
    정말 대단하신거 같아요….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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