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에 적응한다.

집 근처의 Tabac에서 소시지와 과 찬 맥주 먹고 있는데 Like a Prayer가 들린다. 이 노래는 들으면서 따라 부르지 않은 것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아직 몸을 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파리에서 사는 것도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런 반응이 신기한 것은 뉴욕이 살 만 한 이유와는 되게 다른 이유들 때문에 그렇기 때문이다. 뉴욕은 어디서 온 분이건 별 불편함이 없는 도시이지만 파리는 편하게 손끝에 닿는 것들이 귀한 곳으로 보인다. 그래서 적응한다는 말은 뉴욕보다 파리에 훨씬 어울린다. 아, 뉴욕에서는 취향의 이유를 들어 왜 예술가 갑이 을보다 좋은지 변호하지 않고 넘길 수 있지만 여기에선 취존중해 드리겠다는 말은 곧 할 말 없나 보니 무시하겠다는 말과 비슷하다. 유치하지만 대충 사실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일본 얼마나 좋아하는지 익히 들었지만 정말 머스타드와 와사비처럼 맞는 구석이 많은 모양이다. 무인양품과 유니클로에서 생필품(예: 흰 초, J+ 진갈색 치노 등)을 사며 보니까 서울이나 뉴욕 매장들에 비해 훨씬 「일본에서 왔소이다」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니클로나 무인양품에서 크게 일어로 뭘 써놓거나 일본식 치수를 쓰거나 하는 경우를 못 보았지만 여기서는 그대로 쓰고 있어 이채롭다. 열도에서 물리적으로 멀어질수록 심적으로는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이 블로그를 읽는 분들 가운데 내가 불어 하는 걸 본 사람이 거의 없으신 것 같으니 대강 어느 정도 하는지 설명하면, 200명 정도 되는 뉴욕대 파리분교 학생들 중에는 10% 안에 들고 나머지 파리인들 중에는 99% 안에 드는 수준이다. 다행인 것은, 다른 애들은 불어로 소통하다 막히거나 하면 상대가 영어로 대꾸해 버려 싱거워지는 것이 불만인데 나는 인종 덕분에 그렇게 쉽게 영어로 바꾸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불어를 영 못해 보여도 그냥 참고 불어로 끝까지 대화해 준다. 어쨌든 내 불어는 여기 대부분 애들이 그렇듯 사회학 수업은 문제없이 따라갈 수 있지만 지하철 앞자리에 애들 떠드는 건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엘리트 언어다. 그런 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1. 우녕탱

    와 불어 진짜 잘하시나봐요… 전 지금도 앞자리에 앉은 애들이 영어로 떠드는 것도 못알아들어요 ㅠㅠ 교수님들 렉쳐는 알아듣겠는데 애들 수다떠는건 하나도 못알아들어서 맨날 어벙벙댄다는 ㅋㅋㅋㅋ ㅠㅠㅠㅠㅠ

  2. 제이

    마지막 문장에서 완전 동감하게 되네요.. 저도 수업은 따라가지만 친구들이랑 얘기할때면 잘 못 알아 듣겠어요;; 은어도 많긴하지만 어찌나 줄여서 얘기하는지….

  3. 아얀

    오오 불어를 그렇게 배우게 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물론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저 올해나 내년 내 허락하는대로 불어를 시작하려고 하거든요…

  4. 김괜저

    고등학교때 한 것까지 치면 5년째에요.

  5. 똥균

    선배 파리 가셨네요…ㅠㅠ 가기 전에 뵈었어야 하는데 많이 아쉽습니다…ㅠㅠ 파리에서 이번 학기 잘 보내세요~

  6. 고기딖따

    꺄오 엘리트 빠리지앵 무슈 김괜저군. 인종때문에 끝까지 불어로 대화해준다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건데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