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뭐랄 수 없다.

몇 주 전 길에서 주워 온 헌 여행가방은 청소하기가 곤란한 상태인 것 같아 젖혀서 신발 수납장으로 쓰고 있다. 이 집에 산 지도 벌써 네 달 넘었다. 여름에 프랑스에 계속 있게 된 것은 행운이다. 밤에 자전거 타고 지하철 굴다리 밑으로 지나가면서 문득 여기서 여기 말로 소통하며 멀쩡히 살고 있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였다.
까뮈의 Les justes(정의인)을 지난 밤 보았다(Théâtre du colline). 목소리와 얼굴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 그런 연극이었다. 별 생각할 거리가 없는 메마르고 또박또박한 연출이었다. 좋아하는 극장이기 때문에 좀 일찍 도착해서는 큰 기둥에 기대어 좋아하지도 않는 Schweppes를 마셨다. 폼은 잡고 싶지만 극중에 졸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나를 이해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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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이름의 Eyjafjallajokull 화산(에이야퍄틀라이외퀴틀)의 신나는 폭발로 유럽 항공편이 무더기 결항하면서 이번 주 봄방학에 여행 계획을 세웠던 주변인들이 줄줄이 Facebook에 저주를 토해놓고 있다. 곧 출국해야 하는 우리들 역시 내일 발표를 기다리고 있지만 큰 기대는 없다. 늘 있는 파업이나 사고였으면 탓이라도 할 텐데 천재지변에 뭐랄 수는 없었다.

— Sigur Ros : Hljomalind
  1. 금숲

    어쩐지 국내신문에 무슨화산이라고 안 나오더라 ㅋㅋㅋㅋㅋㅋ

  2. 김괜저

    이유는 못 읽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