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헬싱키에서 돌아왔다.

요새 할 말보다 올릴 사진이 많은 것은 좀 별로다. 읽으러 오는 사람보다 보러 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래서이지만 마찬가지로 신나는 노릇은 아니다. 사진은 찍어 놓고 정리하고 편집하므로 올릴 것들이 꾸준히 쌓이는 데에 비해 글은 생각날 때 쓰고 싶은데 인터넷이 집에 안 되다 보니 자유롭지가 못했고 Journler에 끄적여 놓는 것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충동이 가셔서 올리고 싶은 마음이 죽고 만다.


지금은 이미 파리에 돌아온 지 며칠 됐지만 탈린과 헬싱키에서 오 일 정도 머물렀는데 백야라 밤낮까지 창창한 데에 어울리지 않게 전체적으로 조용해서 사람들을 쫓아 여기저기 다녀야 했지만 그만한 성과가 있었다. 제일 괜찮은 곳들을 골라서 갔다는 확신이 드는 작은 도시들이었다. 쓸쓸하니 살기 편한 곳이다. 피부를 여기저기 뚫은 고딩들이 역 앞에 색타이즈를 신고 모여 침을 뱉는 모습은 고향 생각이 나기도 했다.

— Architecture in Helsinki : Souvenir

헬싱키 반타 공항 옆 호텔에서 일박, 탈린의 소련냄새나는 여관에서 일박, 55년 헬싱키 올림픽 때 지은 대경기장에 딸린 호스텔에서 일박하고, 빈 방이 아무데도 없어 예약 없이 도착했던 넷째밤은 전날 현지 Holiday Inn에 막판 방이 나면서 이름있는 호텔 치고는 싼 (그래봤자 사박 가운데 제일 비싼) 가격에 편하게 묵었다. 헬싱키 남부와 남서부의 디자인 구역을 중심으로 빡세게 걸어다녔다. 거의 타게끔 그을린 생선과 순록 고기를 갈아 넣은 샌드위치 같은 것을 주로 먹었다. 괜찮은 커피집도 많은 호감도시였다.

초등학교 2~5학년 동안 어머니의 간청으로 (「에미의 소원이다 이것아」) 축구팀에 있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난 한 번도 축구를 좋아한 적이 없었지만 헬싱키 공항 호텔 바에서 크림 안 들어간 생 노동자 까르보나라를 먹으면서 골 넣은 제라드를 느린 화면으로 잡은 것을 보고 있자니 뭔가 뜨거워졌다. 저래서 하고 보는구나 싶었다. 지금 여기 파리는 거의 집집마다 장남이 죽은 것 같은 분위기이지만…

  1. 월요일

    읽으러도 오고, 보러도 오고, 들으러도 와요.

    오늘 선곡도 단번에 반했어요.

  2. 김괜저

    너무 일차원적인 선곡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3. 스란

    아, 헬싱키… 2년 전에 갔다 왔지만 또 가고 싶은 곳이로군요. 유럽이면서 묘하게 유럽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더랬죠. 사진의 색감이 정말 화사하네요.

  4. 김괜저

    또 가고 싶습니다.

  5. 박뎐

    사진 하나가 깔끔한 일관성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니

    갑자기 망원 렌즈가 탐이 나요 탐이.

  6. 김괜저

    내 것은 십만원 짜리 플라스틱

  7. 유진

    소련냄새… 뭔가 텁텁할 거 같다. 내가 프라하에서 맡았던 그 냄새가 그냄새일까?

  8. 김괜저

    음 소련 스멜

  9. elis

    딱 까모메 식당의 블루가 연상됩니다.

    헬싱키는 정말 저런 푸른 도시인가봐요-

    좋은 사진 감사히 잘 보고갑니당 🙂

  10. 김괜저

    영화 때문인지 일본 사람 많더군요

  11. 김괜저

    비아냥이 제일 크지 않았나 싶은데… ㅎ

  12. maurice

    노래도 사진도 좋아요.

    특히 중간즈음의 흑백사진에 차가 줄줄이 주차된 사진. 귀여워요 ㅎㅎ

  13. 김괜저

    귀여운 게 많았던 곳이었 습니다

  14. 세주

    헬싱키는 겨울에 가야해.

  15.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