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폭풍이발했다.

직접 깎던 철없던 시절은 갔지만 아직도 내 머리에 일어나는 일에는 깊이 관여하고 싶다. 어제 찾아갔던 Rive gauche 최고라는 미용실은 아무리 봐도 값에 어긋나는 머리를 한 직원밖에 없어서 포기했고, 대신 영국의 이름 Tony & Guy 바스티유점에 예약했다. 이름을 대니 킴씨는 왜 이렇게 많을까요 묻길래 한국에는 더 많다고 했다.

오늘 그 근처에서 점심을 거하게 먹고 시간이 남아서 미용실 근처 펑크카페에서 (바스티유 주변은 고딕•망가한 것들로 유명하다) 초코우유(…를 팔더라)를 사 먹었다. 그리고 나서 미용실 앞까지 나와 도로변 진입저지대에 기대 책을 몇 장 읽을까 하는데 어떤 사내가 담배를 문 채로 옆에 와서 불 좀 있느냐고 물었다.

병신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비흡연자인 나는 종종 성냥을 갖고 다닌다. 방에 지갑, 열쇠, 동전 등을 놓는 지점에 성냥갑도 있어서 집어 갖고 나오기 쉽게 되어 있다. 파리에는 라이터 빌려달라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생각보다 꺼내 주는 일이 많다. 아니면 담배 피는 친구들한테 수시로 내놓는다. 성냥이 더 멋있으니까. 한 번은 한 여자가 담배 있냐 해서 담배 안 핀댔다가 그 다음 남자가 불 있냐 해서 그렇다고 줬더니 첫번째 여자가 왜 거짓말 하느냐고 성난 듯 따진 적도 있었다. 담배 안 피면서 성냥 가지고 다니는 또라이와 거짓말장이 중 어떤 걸 할까 고민하는 중에 둘 다 멀리 가고 없었다.

오늘도 청바지 주머니에 긴 부엌성냥 하나가 있어서 줬다. 담뱃잎을 갖고 다니면서 말아 피는 이치고 불이 없는 건 또 처음 보았다. 잘 피우라 하고 미용실에 들어가 갖다 준 잡지를 읽고 있는데 (월드컵 탓에 남성지들이 다 똑같다) 그가 곧 따라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내 머리 맡은 사람이었다. 다행히 담배 밴 손을 씻더라. 잠깐 인사하고 머리를 감고 다시 와서 앉았다. 불어에는 크게 반말(tutoyer)과 존댓말(vouvoyer)이 있는데 대개 손님•점원 사이엔 존댓말을 쓴다. 그러나 좀 젊은 층 바라던가 대안 문화공간, 각종 축제 분위기 등에선 (굳이 저런 게 아니라도 그냥 젊은사람만 있는 곳들에선) 그냥 말 까는 경우도 많다. 불어를 학교에서 배워 익힌 입장에서 나는 남이 반말로 말을 걸어 올 때 오히려 좀 위축된다. 뭔가 더 쿨해야 할 것 같고 격식이 없어지니 방패를 빼앗긴 기분도 들고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이러이러하게 잘라 달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겪어 본 머리 자르는 사람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인간이었다. 가위를 대도장 잡듯 거꾸로 잡고 머리를 향해서 파듯이 돌진하는 방식이었다. 그 다음엔 머리칼을 쫙 펴서 한 손에 잡고 다른 손에 든 가위로 마치 면도날 쓰듯 서억서억 찢어냈다. 이전에도 면도날로 벌초하듯 깎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가위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칙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나중에는 크게 튼 하우스 음악에 맞춰 가위의 한쪽 날만 세워 두개골 에 수직으로 댓다 긁듯 자르며 빼는 것을 십오 분 정도 했는데 반은 잘리고 반은 뽑히는 듯한 기분과 다행히 뭉뚝한 가위 끝이 조금씩 박히는 듯한 기분이 마치 두피에 재봉틀질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도 신기해서 그냥 가만히 보고 있었지만 사실 연약한 소녀 손님이었다면 어쨌을런지 모르겠다. 물론 연약한 소녀들이 미모를 위해 훨씬 더한 고통도 참는 것은 익히 보아 알고 있지만…

막판에는 두발건조기로 바람을 계속 쐬면서 다른 손으로 마구 잘라 날려버리는 기법을 썼다. 어쨌든 과정만큼 독특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머리가 나왔다. 「폭풍(tempête)이 지나간 것 같아.」 사실 난 이발 내내 폭풍이 불어로 뭔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담배 하나를 말아 명함과 함께 건네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 Stephen Sonheim : Ballad of Sweeney Todd
  • 김괜저

    정말이네요

  •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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