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즉 대구에 다녀온 것이다.

— Page France : Spine

Carol은 요새 커피 만드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서울은 그제부터인가 날씨가 좀 선선해졌지만 대구는 아직도 많이 더웠고 나는 꼼짝않고 앉아서 Ulysses를 읽으면서 그녀 커피 내리는 걸 구경하고 커피가 나오는 족족 받아먹었다. Carol을 한국에서 본 것도 처음이고, 피차 한국말 하는 걸 들은 것도 거의 처음이다. 그녀는 한국말이 서툴지만 가르치는 커피 선생님은 말을 줄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녀가 커피를 좀 성급하게 내리자 성급함에 대한 일화를 들려준다. 일본 막부시대 한 명장과 결투에서 맞붙게 된 한 무인이 차를 우려내는 마음으로 침착하게 준비에 임했더니 이를 본 상대가 지레 겁을 먹고 줄행랑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군대에서 사격시에 숨을 쉬면 안 되듯이 숨을 멈출 정도로 집중해서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 또 암벽 등반시엔 열 개 손가락과 열 개 발가락이 마치 스무 개 눈처럼 되듯 그런 정도의 몰입을 해야 한단다. 이렇게 약 이삼십 분을 침착함의 중요성 한 주제에만 아낌없이 투자해 가르쳐주는 그런 분이었다. 과연 핸드드립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개드립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커피로 창업 준비하시는 분들은 두세 달 동안 커피 대신 모래로 감을 익히는 연습을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쯤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아서 밖에 나왔다. 대구 외곽에 인적 드문 동네였는데 미즈컨테이너 주소를 찾아보려고 마침 보인 피씨방에 들어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전부 거기에 있더라.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난 피씨방에 가 본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스물 몇 살 먹은 남학생이 피씨방에 들어와 「제일 짧게 할 수 있는 게 얼마 동안이죠」「이 카드를 어디에다 꼽아야 되는 건가요」해 가면서 은근한 사투리 흉내로 물으니까 아르바이트생이 날 외계인 보듯 뚫어져라 보았다. 「카드는 꼽는 게 아니고 화면에 번호 입력하시는 건데요」

Carol과 얘기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고, 커피를 또 마시고 먹을 것 먹고, 결정적으로 물고기가 발 야금야금 해 주는 닥터피쉬 족욕인지를 하고 그러다 보니 정말 파리와 뉴욕 더욱 그리워졌다. Carol과 나는 작년 겨울 친구집 잔치에서 (아님 그땔 전후해서) 처음 만났는데, 파리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식으로 둘 다 술 몇 잔 들어간 상태로만 수없이 보았던 친구였다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더 친해진 사람이다. 포도주를 특히 좋아하기 때문에 파리 기억을 떠올리며 Côte du Rhone 한 병 나눴다. 토요일엔 어쩌면 답례 차원에서 서울에 올 지도 모른다고 하니 그랬으면 좋겠다. 대구는 처음인데 친구 때문이기도 하고 아주 인상이 좋았다.

  1. 조쉬

    정말 대구에서 이 모든 풍경들이 담아진건가…싶을정도로 다양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_+

  2. 김괜저

    중앙로 반월당에만 딱 붙어 있었는데도…

  3. 피아트리체

    사진보다가 나도 모르게 링크 잡아갑니닷 *.*

    사진이 다 예쁘네요 ^-^

  4. 라쿤J

    아 동성로의 사진…익숙한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ㅎ_ㅎ

  5. ko-un

    괜시리 친한척 하고 싶어라!!

    미즈 동성로1호점이 더 본격적인 느낌인데ㅎ

    강남점 사진보니 동성로 1호점과 더 가까운 느낌인데 꽤 커서 공장같이 느껴지거든요ㅎㅎ 스파게티 샐러드 맛나고 배 부르지요.

    근데 생각해보니 대구대 앞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들었으니 거기가 본점이겠네요.

    모르겠다;;

    미즈까지 서울 진출했다니 핸즈커피나 코페아도 곧 진출할것 같네요. 대구발 카페들.

  6. 김괜저

    아 맞다 대구를 아는 분인 걸 ! 근데 찾아보니 2호선으로 나오긴 하던데요. 맛있고 배 터졌습니다.

  7. young

    대구 오랜만에 보니까 재미있네요
    왠지 저도 대구 생활 2년 경력자

  8. 희나람

    억수로 더우셨을텐데 ㅎㅎㅎㅎㅎ
    사진을 들을 보는데요,
    대구에서 20년 넘게 산 제가 보는데도, 새롭게 보이는거죠? 신기하게시리.

  9. 김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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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카방클

    담엔 대구에서 40분만 투자해 포항으로 오세요~

  11. Pingback: 나는 씨네필들과 어울리던 시절 친구들과 놀아버렸다. — 괜스레 저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