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괜스레 저렇게는 김괜저(@gwenzhir)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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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마신다.

엄청 오래된 글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다뤄주세요.

우산이 소용없는 비바람에 양 어깨가 푹 젖은 채로 쌀쌀하게 냉방이 돌아가는 퇴근버스를 타는 기분은 순전히 어떻게 마음먹었느냐에 따라 싱그럽기도 하고 한스럽기도 하다. 오늘은 싱그러운 편이었다. 어제 오후 더없이 맑기에 군화 한 켤레를 뒤집어서 양지에 널어 놓고 출근했다. 돌아오니 망부석처럼 되어 시커멓게 물 먹고 있다. 다시 신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어제는 맑아서 좋고, 오늘은 비 와서 좋다. 화발다풍우(花發多風雨)하고 인색족별리(人生足別離)라. (李白)

몇 주 전에 커피를 매일 마시니 좋다고 쓴 대로 무인양품의 1리터들이 프렌치 프레스가 있었는데, 미끄러져 닫히는 화장실 문에 정통으로 박치기 당하고 다 깨졌다. 그게 일주일 정도 됐다. 다른 조사(弔事)로 달았던 근조 리본을 프레스에 붙여놓았다. 속으로 많이 울고 나서 다 먹은 갈색 커피병에 종이를 알파벳 꼴로 잘라 붙여 Tip jar를 만들었다. 십원짜리가 많이 모였다. 힘을 얻어 새로 장만한 만 오천원짜리 착한 값의(역시 1L들이이므로 파격적) 프레스가 오늘 Brundi 산 원두와 함께 집에서 도착했다. 생각보다 만듦새가 좋고 구경이 고(故) 무인양품프레스와 정확히 같아 훌륭한 거름망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새 물건 본연의 거름망도 깔끔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시 힘껏 내려마시자. 카페인은 놀라운 일을 해낸다.

— Chanson de Maxence from Les desmoiselles de Roche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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