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괜스레 저렇게는 김괜저(@gwenzhir)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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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복이나 샀다.

엄청 오래된 글입니다. 역사적 기록으로 다뤄주세요.

휴대전화 없이 일 년을 넘게 살아보았는데 생각보다 할 만 했다. 적어도 나의 번영과 안녕에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편의만 조금 희생되었다. 물론 그 일 년동안 손안의 세상은 끔찍하게 빨리 변했는데도 아직 무선인터넷 되는 (그래서 보는 눈이 많은) 커피집에서 노트북이나 아이패드에 대고 작지 않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람(스카이프 통화를 하고 있다)은 좀 이상해 보이나 보다.

휴대전화가 없지만 휴대전화가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며 만남을 정한다는 것은 나를 약속에 관한 현대인의 상호수시연락범위로부터 거의 완전히 자유케 하였다. 언제 어디서 보자는 말이 점점 무거워졌다. 동시에 죄없는 친구들은 문자로 간단히 조정할 수 있었던 나 따위와의 약속 때문에 쓸데없이 답답해졌다. 양심이 아팠다. 부대에서는 비상시에 연락한 방법이 없으니 초조해했다. 생각 끝에 동생의 옛 전화기를 가지고 가서 번호를 만들까 했는데 피그렛처럼 분홍색인 기계를 들고 다니는 게 우스울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리점 한 곳에 가서 백원짜리만한 윤곽렌즈를 낀 점원에게 일 년 남짓만 쓸거라 약정이 안 되는데 스마트폰 아닌 구식기계를 사서 개통할 수 있는 거 없느냐고 묻자 이런 것도 모르고 찾아오냐는 듯한 보라색 눈으로 인터넷에 파는 중고전화기 아니면 구할 데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냥 새 아이폰을 사서 내후년까지 쭉 쓸까 싶은 마음이 확 올라왔다. 그러나 모카 아몬드 단백질 스무디와 치미창가를 먹고 나니 이내 그런 마음은 가라앉았다. 유니클로에서 국방색 내복이나 샀다.

  1. chloed

    이런 기시감! 작년 여름 휴대전화가 없던 석 달 동안 저의 편의는 딱히 증감이 없었고 때로는 자유로웠으나 주변 사람들의 편의가 추락했었어요. 몇 시 몇 분 어디서 만나자, 라고 하면 다들 허둥대며 왔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피그렛 분홍색 기계 괜찮네요, 선배의 미학적 소지품 범위에 추가하심이… ㅎㅎㅎ (제 문장들, 다 쓰고 보니 하나같이 어색하군요 번역한 것처럼)

  2. 김괜저

    문장이 나와 같구나 좋아

  3. 김괜저

    따뜻하게. 얇게. 가볍게.

  4.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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