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땐 아파도 좋았다.

몸살기운이 며칠간 몸을 덮고 있었다. 아플 때만 커피를 먹지 않는다. 입이 말라선 안 되고 잠도 더 푹 자야 해서 그렇다. 주말 동안 책은 좀 많이 읽었지만 다른 별다른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많이들 그렇겠지만 아플 때 꼭 해야 하는 일련의 의식들이 있다. 양말 신고 자기. 짜이나 생강차 마시기. 완탕국이나 순대국 같은 것 먹기. 음악 들으면서 목욕하기. 정해 놓긴 좀 남사스럽지만 음악은 대개 팔구십년대 가요 즉 머리가 이 노래 참 멋지군 해서가 아니라 몸이 벌써 친근하게 기억하는 그런 노래로. 약에 일가견이 있는 후임친구에게서 타이레놀을 잔뜩 얻었다. 일과용/저녁용으로 번갈아 복용하고 주말이 어찌 갔는지 모르게 쿨쿨 잤더니 눈 녹는 아스팔트에서 족구할 만큼 나아졌다.

재작년 겨울에 아팠을 때가 생각난다. 뉴욕 뜨기 사흘인가 전. Mad Men을 보면서, Hendrix진에 자몽주스를 타 먹으면서, 파란 물병을 거꾸로 꽂아 쓰는 가습기를 틀어놓고 프랑스 가는 짐을 싸면서 아팠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건 아픈 게 아니고 천국 비슷한 거였다.

  1. 내꺼먼저

    항상 지금이 가장 아프죠. 힘내세요. 잘 보고 있습니다 🙂

  2. 유진

    성민아 나는 그 무렵에 너를 자주 봤던 기억이 나… 야물딱지게 싼 커다란 박스들도 기억나고… 얼른 뉴욕 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