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민간인 대접한다.

사람은 어떤 대접을 받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일직근무를 서고 오전에 좀 맹한 상태로 고농축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휴대잔을 마우스 오른쪽에서 입까지 가져가는 찰나에 특정 미숙성집단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에게는 이러이러한 대접을 받으면 이러이러함에 물들고, 저러저러한 대접을 받으면 저러저러함에 물들게 되는 속성이 있다. 근성이 생긴다고 할까. 「난 이러이러하지 않은걸!」하는 반감이라도 정말 노력하지 않으면 「이러이러한 것 보다는 조금 나은」 또는 「조금 다른」 정도로 끝나기 쉽다. 초등학생 대접을 받는 사람은 초등학생처럼 굴기 쉽고, 그러지 않기로 노력하면 중학생이 되기도 쉽다.

포도주 저녁 잔치, 재작년 오늘

입대 후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 없는 일들, 정치사회적 요소 배제된 가벼운 주제, 그냥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맥락없는 얘기 등으로 블로그를 채운 지도 이제 일 년 반이 됐다. 블로그를 인맥 목적으로 쓰지도 않고 내용도 최대한 사적이고 친근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영세해 보인다는 점은 자랑거리이지만 지금처럼 쓰는 양이 비교적 적은 시점에도 하루 몇백명이 방문한다. 거기에 나중에 문제삼을 만한 거리를 조금도 남기고 싶지 않은 노파심이 더해져 필요 이상으로 군인 김괜저의 생활 중 군인으로서의 모습을 쏙 빼고 거기에 모든 현안에 대한 입장도 가리고 쓰다 보니 내가 봐도 재미 없다. 부대 안에서의 삶은 가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만족스럽고 친구도 많은데 오히려 인터넷을 이용할 때 박탈감이 부각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RSS를 읽을 때나 잡지를 볼 때도 시리아나 이란, 에너지 문제, 소수민족이나 사회적 약자 등 부럽지 않은 이야기를 주로 읽는다. 최근 뉴욕 매거진에서는 차이나타운 사는 중국인 소년이 미군 입대해서 이라크 파병을 가서 차별과 폭력으로 고생하다 자살한 사건을, 뉴요커에서는 한 게이 대학신입생이 남자 만나는 모습을 방짝이 웹캠으로 생중계하고 트위터질해 마찬가지로 자살케 한 사건을 집중 취재한 것들을 푹 빠져서 읽었다. (오해할 까 말하는데 절대 schaudenfreude의 목적으로 비극을 읽은 건 아니다.)

  1. 김괜저

    그러게요 상반된 걸 하고 있네요.

  2. 김괜저

    🙂

  3. 우녕탱

    공감입니다 정말 ㅋㅋ 제머릿속은 짬내로 가득하지만 군인신분인걸 숨기려 노력하다 보니 블로그나 SNS는 민간인화되어가는 것 같아요… ㅋㅋ

  4. 김괜저

    컴퓨터 속은 모두 민간

  5. 681

    요새 schaudenfreude 여기저기서 듣네 유행이라기엔 뭔가 묘한 우연이여

  6. 김괜저

    Avenue Q 사운드트랙을 들어봐

  7.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8.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