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스턴에서 친구 몇 명을 만났다.

첫 버스를 놓치고 나서 올라탄 버스는 Yo!라는 신흥 중국마을 버스인데 Fung Wah 버스의 잿더미에서 피어오른 불사조 같은 느낌을 주긴 하지만 실제로는 Coach USA 계열사로 보이며, 시설이 비교할 수 없이 깔끔하고 첨단이다. 무선인터넷이야 기본이고 자리마다 개인별 콘센트로 전기를 굳이 관개(灌漑)해 놓아 무척 편했다. 나는 그 콘센트와 창문 사이에 휴대전화를 걸쳐 놓고 충전하다가 전화기가 사이 틈으로 떨어졌고 버스의 외벽과 내벽 사이 엄한 곳에 갇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보스턴 남역에 도착해 관계자를 찾아 호소하자 빨갛고 품이 넉넉한 단체복을 입은 그녀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거 꺼내려면 버스를 통째로 뜯어야 돼. 늘상 있는 일이야 아마 버스마다 서너 대 씩은 들었을 걸……. 그것 참 안됐구나.」

그 날은 성 패트릭의 날이었다. 상당히 아일랜드한 도시답게 다들 정말 파릇파릇하구나. 사실상 아무것도 기념되지 않는 이런 종류의 놀고 마시는 기념일이 가장 인기가 좋다. 요즘 서울에서 할로윈 하는 것과 비슷한 병행수입의 촌스러운 느낌이 활짝 피어나 장관을 이루었다. 사 년 전 더블린 풍경과 녹색의 농도를 비교해 보니 재미있다. 다음날 오후까지 지하철이 마비되다시피했다.

이번 보스턴행의 주된 목적은 근처 대학원에 합격한 후 학교 탐방 중인 천적과 난난을 만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친구들이 어디어디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애가 달라보이는 효과가 있었는데, 같은 친구들의 (대부분 더욱 눈부신) 대학원 진학 성과는 들어도 <와, 정말 좋은 일이잖아?> 정도의, 마치 번역체처럼 낯설지만 진심인 기분만 든다. 천적과는 도착 당일 밤 HJ까지 만나 저녁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펍에 몰린 사람들을 피해 포도주를 한 병 사서 천적네 숙소에서 프랑스인 공돌이 친구 Jean과 함께 마시며 놀았다. 이튿날 아점을 흔한 해산물 식당에서 먹었는데, 내 입에도 후추를 너무 많이 쓴 블러디메리가 나왔다. 얄궂은 게 아직도 그 한 잔의 맛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맛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셀러리에 미세하게 칼집을 넣어서 쓰는 걸 고려해보았다.

  1. sooyounglimbly

    사진들 색감이 너무 예뻐요 @.@ 보정 하신 건가요???

  2. 김괜저

    그렇습니다

  3. chloed

    으잉 헉 선배 저도 저날 보스턴에 있었는데!
    굴 먹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 애들이 초록색 옷을 입고
    완전 맛탱이가 간 눈으로 제가 굴 먹는 걸 관찰했어요 한 입 줄 걸…

  4. 김괜저

    굴 먹는 건 관찰할만 한 모습이지 ㅎㅎ

  5. 미로

    지난 주말에 홍대에 나갔다가 외국인들이 왠 초록색 모자를 많이 쓰고 다니길래 무슨 날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성 패트릭의 날이더라구요. 서울도 보스턴도 초록초록, 아마 더블린은 더 초록초록 했겠지요. =)

  6. 김괜저

    더블린은 오히려 그렇게까진 아닌 게 재밌지요

  7. 저기

    분노의 손가락도 보이는 군요. ㅎㅎ
    사진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