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에게 고마웠다.

바빠서,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을 많이 그대로 흘려버렸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들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나 나 혼자 하는 일들을 많이 포기했다. 책과 영화는 의무감에 보지만 공연 전시는 거의 다 놓쳤고 드라마도 안 본다. 몇 주 째 요리도 거의 안 한다. 여름에 거처를 옮기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 뭘 만들고 사고 하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일을 많이 하고, 글을 많이 쓰고, 사람을 많이 만난다. 직장은 인턴이라고 하기엔 이미 매우 깊숙히 들어갔다. Jay와 함께 구상하는 일도 갑자기 진전이 생겨서 막 굴러가고 있는 중이다.

NYU First Run Film Festival이란 제목으로 Tisch 학생들 졸업작품 영화제가 이번 주다. 졸업한 지 몇 년 지나 단편을 완성한 친구들 작품이 주말동안 너댓 편 상영된다. 어제 본 것은 Charlotte이 쓰고 감독한 The Somerset인데, 정말 좋았다. 좀 놀랐다. 젊은 역사 선생님인 주인공이 버지니아의 한 역사재현(historical reenactment)단에 들어가고 싶어 심사용 영상을 만드는 내용이었는데, 나머지 작품들보다 한 두 단계 더 높은 수준이었다. 잘 만들어서 너무 고마웠다. 잘 못 만든 친구 옆에 앉아있는 건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형편없었으면 큰일이었을 텐데 다행이었고 오늘 내일 볼 작품들도 좋았으면 좋겠다. (<좋았으면 좋겠다>라니…….)

나머지 작품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뇌 의식이 보편화된 미래를 다룬 공상물 같은 건 푸릇푸릇해서 좋았지만, 가장 힘든 건 혼두라스와 브루클린, 여인이 햇빛 가리고 서서 피망을 베어무는 꿈과 건물 옥상에서 양봉을 하는 현실을 오가는 슬픈 사랑얘기였는데 아 힘들었다. 그러나 소설 워크샵에서 Marcelle이 강조하듯, 학생 작품이 구리다고 까는 것보다 쉽고 불필요한 일도 없다는 말을 되뇌였다. 내게도 사람들이 이만큼 친절한데.

  1.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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