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반이 무겁다.

책상에 앉으면 등 위로 선반이 두 칸 있다. 선반에는 책, 잡지, 음반, DVD, 사진기, 그리고 지금까지 쓴 수첩들이 있다. 디어 매거진이 한 상자 더 도착해서, 저렇게 천장 밑에 쌓아놓았다. 편집장께서 다음달에 방뉴욕하시면 같이 이 땅의 유수한 독립서점들을 순회할 계획이다. 명함도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만든 것이 아닌 명함을 가져본 것이 처음이다. 주기 아깝도록 예쁘게 생겼다.

수첩을 보면 왼편에 직접 만든 것들이, 오른편에 몰스킨이 쌓여있는데 내가 사서 쓴 저 많은 몰스킨을 손에 쥐고 있자면 웃음이 난다. 몰스킨을 처음 사서 썼을 때에는 가) 몰스킨만이 쪽팔리지 않은 수첩이라고 생각했고 나) 쪽팔리지 않은 수첩을 쓰는 것이 창작과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군사기본교육 끝나고 특기학교(행정) 때부터 시작해 군생활 초기에 몰스킨에 깨알같은 글씨로 일기를 쓴 게 한 권 반 되는데, 어느 날 쓰다가 물에 빠뜨려서 아코디언처럼 부풀어오르고 수성펜으로 쓴 부분은 심하게 번졌다. 그 때부터 다시 수첩을 만들어 썼다.

예전만큼 잡지를 사 모으지 않는다. 내용이 중요한 것은 도서관에서 읽고, 디자인이 좋은 것은 과월호를 하나만 산다. 그 돈이 어디 쌓이고 있는 건 아니고, 책 사는 쪽으로 많이 옮겨갔다. 중고책을 주로 사 모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새 책은 주로 독회에 가거나, 직접 추천을 받은 것 위주로 산다. 책의 무게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있는지, 스펀지처럼 가벼운 문고판을 많이 사게 된다. 안양에 많이 남겨놓고 왔는데, 본가도 막 이사했고 나도 곧 옮길 처지라 아직 넘겨받을 여건이 안 된다.

문 뒤에 있는 옷장이 사실 작지가 않은데도, 워낙 구조가 글러먹어서 자주 입는 옷은 밖에 두었다. 바지가 많은데 입는 게 정해져 있다보니 내다 팔아야 하는데, 대부분 가랑이나 무릎 같은 곳을 기운 적이 있어서 돈도 별로 못 받을 것 같고 애착도 좀 남는다. 예전처럼 색색별로 걸려 있는 걸 보고 흐뭇해하고 그런 정도는 아니지만, 드물게 입더라도 있어서 나쁠 건 없는 옷들이다. 옷을 막 처음 사 모으기 시작했을 당시에는 내가 싫증을 쉽게 내는 편인 줄 알았는데, 지금도 늘상 입는 것들은 사 년, 오 년 전에 산 옷들이다. 어차피 중고 옷을 많이 입으니까 신식 물건을 사면 잘 안 어울릴 때도 많다. 지난 겨울에 산 국방색 외투처럼, 낡은 것들과 입었을 때 틀려 보이지 않으면서도 맘먹고 장만한 티가 좀 나는 그런 옷이 앞으로 갖고 싶은 옷이다.

  1. journal J

    괜저님 사진이나 글에서 일정한 분위기가 풍겨서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방 안도 그렇네요
    전 사진 찍을때만 치우게 되더라구요;

  2. 김괜저

    저도 사진 찍을 때만 치우는데 사진을 좀 자주 찍습니다.

  3. berrlchoi

    방이 참 깔끔하군요 ㅎㅎ 나도 저런 자세를 좀 배워야할텐데 ..

  4. 김괜저

    자세까지야 … ㅎㅎ

  5. sunho

    저 짜임 책장은 어디서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한데 물어봐도 되나요?
    책도 늘고 옷도 늘고 물건도 느는데 방이 늘질 않네요..

  6.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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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