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레몬 탑 앞에 서서 몇 주 전을 생각했다.

레몬 탑 앞에 서서 몇 주 전을 생각했다. 몇 주 전에 이 곳 Bowery Whole Foods Market에서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 있었다. 말만 몇 마디 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그 사건의 현장에 토요일 오후같은 시간에 돌아와 서려니 무척 시큼했다. 레몬이 어찌나 동글동글하고 반짝거리던지, 가짜인가 싶어 손에 쥐고 굴렸다.

칵테일 호밀빵에 체다와 알팔파(자주개자리) 순을 올려서 구워먹었다. 컬리플라워를 데쳐서 페스토와 로즈마리를 묻혔다. 알팔파 순을 일주일 내내 먹었다. 차게 우린 커피를 열흘치 만들어 냉장고에 쟁여두었다. 사월은 「빠른데」라고 되뇌일 겨를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나저나 <봄날이 간다>의 감수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시 속의 봄에 대한 교과서적 반응은 가고 나면 더위가 아닌 추위가 되돌아올 것 같은 그런 엄살인데, 나는 봄 가고 여름이 오는 걸 그 자체만으로 아쉬워해 본 적이 없다. 지금 한국 민주화에 대해 써야 하는 과제를 하면서도 「서울의 봄은 얼마 가지 못했다」 같은 문장을 읽으면 세상에 겨울과 봄 딱 두 계절밖에 없는 듯한 기분이 든다. 유신이 겨울이고 5공이 여름인 건가? 물론 꽃이 지니까 좋은 시절 간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동하는 유구한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은유는 정확한 걸 쓸수록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래 된 것들은 날이 무디니까. (하지만 딱 하나, 목련 앞에서는 좀 약해진다. 목련은 정말 엄청난 꽃이다. 주변에 없는 것이 다행이다. 부대 건물 중앙정원에 목련이 있었는데, 화장실 청소하다 창 밖으로 그 꽃 떨어지는 꼴을 보면 동요하지 않기가 무척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