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스타의 유연한 존재감

REUTERS/Danny Moloshok/Files

싸이의 후속곡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이를 과제하듯 시청하는 해외유학생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친구들이 어떤 질문을 할까? <마더파더젠틀맨>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 상상하는 동안 페이스북에는 이미 신곡에 대한 미국 친구들의 반응이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한다.

<강남스타일>이 폭발하는 동안에, 외국의 많은 교민들과 유학생들이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는 「정말 그 정도냐」, 현지인들에게는 「이건 뭐 하는 음악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간 월드스타 운운하는 자화자찬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사례가 많았었기에 「정말 그렇게 유명할까」라는 의심의 시선이 있었지만, 이제 <강남스타일>은 어느 쪽으로 재나 여지없는 대성공임이 분명해졌다. 한국에서 시작된 그 무엇도 이 한 곡만큼 모든 층의 대중을 폭넓게 사로잡은 적이 없었다. 미국인 가운데 남·북한을 구별할 수 있는 이보다 말춤을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이런 반응을 피부로 느끼는 유학생들은 종종 싸이의 성공을 자기 일처럼 뿌듯해한다. 버지니아 주에서 공부하는 한 유학생은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기회가 되어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말했다. 온라인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도 싸이가 불러온 변화를 제보하는 글이 꼬리를 문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주류에 진입하기란 불가능해 보이던 중, 같은 반 금발 친구들이 「강남은 어떤 곳이니」하고 먼저 물어온 순간의 감격에 대한 것이다. <투데이쇼>에서 싸이가 진행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을 때 애국심이 고취되었다는 증언도 이어진다. 이처럼 싸이의 성공에 고국을 떠나 있는 이들이 감정이입하는 방식은 애국이란 키워드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가을 뉴욕 워싱턴광장에서 <강남스타일> 플래시몹을 펼쳤던 뉴욕대 한인 학생 세 명은 올해 한국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센트럴파크에서 삼일절 만세운동을 재현하는 행사를 기획했다. 사물놀이와 거대한 비빔밥이 등장했고, 뉴욕 시 한인 고등학생들이 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낭독하고 만세삼창하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들은 <강남스타일> 플래시몹에서 더 나아가 「단순히 즐기고 마는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 홍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벤트」를 열기 위해 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강남스타일>을 가히 유학생들을 애국의 길로 이끄는 일등공신이라 부를 만 하다.

그토록 만들어내려고 애썼던 <백인도 흑인도 열광하는 우리 것>이라는 신화에 실체가 생기자 많은 이들이 이를 한국 문화의 새 역사로 치켜세웠다. 마치 한국에 문화가 있는 이유가 세계를 사로잡기 위해서라는 듯한 반응이다. 주인공인 싸이는 몇 달 전 한 기업이 20·30대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김장훈을 따돌리고 <애국 스타> 1위를 차지했다. 2007년 병역 부실 판정 당시 그가 맞았던 여론의 뭇매와 지금 그가 누리는 국민적 응원과 찬사가 애국이란 키워드의 양면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애국이란 뿌연 잣대 없이 싸이를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일까.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진 재외한인사회의 파편화된 의식 속에 조국은 각자 떠나온 지점에서 시간이 멈추어 있다. 누군가에게 한국은 아직도 변방의 소국이고, 다른 누구에게 한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된」 더 이상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누군가에게 애국이란 곧 나라 잃고 떠돌던 애국지사들이 몸 바치던 민족정체성 확립을 말하고, 누군가에게는 세계 곳곳의 주류사회로 진출하여 한국인의 입지를 넓히는 것을 말하며, 누군가에게는 고민 없이 싸이의 가사처럼 즐겁게 내 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다양한 사람들이 동시에 <강남스타일>의 기적에 감동하면서, 혼재하는 여러 세대, 여러 갈래의 애국 모델로 동시에 발탁된 애국 스타 싸이의 몹시 유연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426일 싸이는 뉴욕 트라이베카 필름 페스티벌에서 혁신상을 수상했다. 주최측은 그가 「세계 최초로 유투브 1억 뷰를 달성, 세계인을 하나로 만드는 문화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싸이는 작년에 같은 상을 받은 저스틴 비버처럼 세계를 하나로 모은 스타라는 점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싸이의 성공이 유학생들이 남몰래 겪는 조국에 대한 애매한 부채감을 대리 해소해 주고, 주류의 변두리에서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교민들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음은 분명하지만, 애국 스타라는 무거운 명찰 없이 그저 반전있고 놀땐 노는 젠틀맨으로 무대에 설 때야말로 그는 빛을 발한다.

— 젠틀맨코리아 5월호에
  1. 융민킴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유학생의 입장에서 굳이 이렇게 표현하고는 싶지않지만 싸이는 ‘애국’을 한게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과거보다 지금 현재가 너무나 빛나기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니 괜히 현재에는 ‘애국’이라는 명찰이 작용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같네요. 어쨌든 자기나름의 멋진 애국이 성공했으니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2. 김괜저

    죄송하지만 남겨주신 소감의 내용은 이해하기가 조금 난해하네요 🙂 어찌됐건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3. 카방클

    개인적으로 조금 낯뜨거운 건 사실이네요…그나저나 ‘버지니아주의 한 유학생’ 이라하니 뜨끔

  4. msg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진 재외한인사회의 파편화된 의식 속에 조국은 각자 떠나온 지점에서 시간이 멈추어 있다.” 동감… 재외 노친네들 아직도 80년대 ‘한국사람’으로 살고 계심…

  5. 오엠지

    노파심이지만…. 싸이나 기타 등등 해외에서 시선이나, 편견등 와전된 해석같은게 없었으면함

    국내 과열 뜬금 내비근성이라든가 애국심 언플 역시 마찬가지고..

  6. 681

    괜히샀나 여기서 읽을껄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