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ㅂ벽하다.


Bushwick의 잘 나가는
에티오피아 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었다.
열 두 명 모두 설사를
하였다는 후문이지만
맛있었다.


영상을 만들고 글을 쓰고
헬스 트레이너도 하고
낮에는 바텐더인
Brian을 만났다.
같이 만들 게 있어서

완벽주의 성격을 가진 것과 완벽에 가까운 일을 해내는 것처럼 다른 것도 없다는 건 이제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에 차지 않는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다보면 우울해진다.

어렸을 때 (여기에도 썼었는데) 이런 게 불만이었다. 「만 원짜리 케익, 맛 없어도 좋으니 오천 원에 만들어주시오」 하는 것. 그러나 그 오천원 짜리 케익을 표정 변화 없이 뚝딱 싸게 싸게 만들어서 드릴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건 왜 구린가요?」라고 물으면 「아 오천원이라서요」라고 하면 되는 건데 그걸 「저기요 왜 구리세요?」라고 들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사실 난 디자인이라면 이미 이천원, 오백원짜리를 해맑은 표정으로 늘상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닥 내적갈등이 생기지 않는 데 반해, 오히려 경험이 더욱 없는 분야에서 하는 일들이 성에 안 차면, 찝찝함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회계장부가 검색이 안 된다든가, 서버상 이름과 프로젝트 목록상 이름이 안 맞는다든가. 지금은 현상 유지도 급급한 회사에서 저런 걸 붙잡고 앉아 있고 싶은 욕구가 치솟아 한 시간에 한 번씩 뒷목을 잡는다. 가진 게 시간이던 군대에서 엑셀로 장인정신을 발휘하던 습관 탓이다.

집에서 일 없이 취미삼아 요리하는 블로거면 육수를 수억 년 끓이고 한정판 그릇에 담아 사진찍고 하겠지만, 동네 김밥집을 열어 놓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 한다」는 저 지긋지긋한 말에 대한 기본 반응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항상 좋은 건 아니거든?」 이런 식의 히스테리여서는 곤란하다. 「응 좋아」 하고 나서 다시 돌아가 푼돈 벌고, 따로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아주 작은 것이라도 완벽하게 만드는 습관을 몸에 익혀야 한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두뇌 가동모드를 <흡수하기>와 <발산하기>로 나눠 볼 때, 같은 분야라도 흡수할 때와 발산할 때가 명확히 구분되어있지 않으면 규율이 서질 않는다. 책을 읽다가 글이 쓰고 싶으면 책을 펴놓고 글을 쓰면 안 되고, 생각의 개괄만 적어 놓고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좋다.

  1. 김사료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에요.
    괜저씨 글은 좋은 부분이 많네요.

  2. 김괜저

    고맙습니다. 생각이 다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쓰는 게 좋은데, 그러질 못하네요.

  3. e

    ‘응 좋아’ 하고 다시 돌아가 푼돈 벌고. 부분이 좋아요.
    개괄만 적어 놓고 나중에 다시 돌아와도 착착 살이 붙는 정도의 내공이라면 부럽군뇨. 자유롭겠어요.

  4. 김괜저

    전 오히려 나중에 돌아와야 살이 잘 붙더라고요.

  5. 버섯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