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창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요세미티에 있는 내내 날이 뜨거웠다. 숙소 문 앞에 놓인 신문 일면 제목이 <유례없는 불볕더위>였다. 일정을 마치고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 가는 길 옆에 펼쳐진 옥수수 농장과 초원이 숯불에 올려놓은 것처럼 굽고 있었다. 나는 동창 HJ와 앞 자리에 앉아서 해를 정면으로 마주한 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종교 얘기도 하고, 내 신생기업 얘기도 하고, 그녀가 연구하는 그래픽스 분야 얘기도 하고, 같이 뭐 하나 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던지길래 그 얘기도 했다. 어제 O와도 잠깐 했던 얘기인데, 난 동창들과는 어느 정도 깊이만 잘 맞추면 반드시 말의 <전압>이 맞는다고 느껴왔다. 이번에 캘리포니아에서 같은 기수 동창 여섯 명을 따로따로 만났는데, 그런 확신이 다시 들었다.

어쨌든 한국에서 태어나 똑같은 시기에 태평양을 건너는 데 성공했고, 그러는 데 필요한 걸 맞춰넣느라 포기한 것들의 목록을 가끔씩 무의식 중에라도 들춰볼 것이라는 점. 그것은 이미 꽤 큰 공통점이다. 나는 내 정체성에서 특목고생, 유학생 이 두 부분이 차지한 자리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몇 년 헛고생하다가, 정체성은 지우거나 몰아내는 게 아니고 겹치고 쌓는 것임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나와 비슷하게 온 친구도 있고, 전혀 다르게 간 친구도 있지만, 결정의 순간은 다들 있었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결정!>한 친구와는 더욱 말이 잘 통하지만,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친구들과도 조심스럽게 잘 풀면 통한다.

며칠 전 박해천 교수께서 트위터에 「여러분이 쓰지 않으면, 바로 윗세대가 여러분 이야기를 먼저, 그리고 대신 써 줍니다」라고 하셨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는 곧 <SAT 층>과 <TOEIC 층> 사이의 넓은 강에 대한 내용이 필연적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 제대로 쓰인 바가 없는 것 같다. 빼도박도 못할 상층 초입에 선 입장에서 (물론 상층에 <얻어 걸린> 나 같은 위치니까 가능한 것이겠으나) 공통된 서사를 가다듬는다는 것은 물론 없는 목소리를 되찾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에 우리가 어떻게 끼워맞춰들어가는지 주제파악하고, 애매한 부채의식(다시, 나 정도의 위치니까 가능한)에 실체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답은 없고 질문만 많다면, 각지에 흩어진 질문들을 잘 모아서 정교하게 배치해서 부등식처럼 답의 영역을 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그런 게 내가 요새 동창들만 만나면 어떻게 사는지 기를 쓰고 들으려 하는 이유인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1. sue

    사진 좋아요. 샌프란에서 재미있게 지내다 가시길 😉
    혹시 southern food 좋아하시면 tenderloin에 brenda’s soul food.. 을 추천합니다

  2. 김괜저

    아 그건 못 먹었네요 텐더로인에 자주 있었는데 … 대신 버클리에서 괜찮은 크레올 음식을 먹었습니다.

  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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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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