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을 보았다.

NO, 2012

La Science des rêves, 2006

Amores Perros, 2000

La mala educación, 2004

Y Tu Mamá También, 2000

Diarios de motocicleta, 2004

Babel, 2006

The King, 2005

이 배우 좋아하는 사람 나 말고도 많은 거 알지만 굳이 특집을 하겠다. 며칠 전 New Yorker Festival에서 마련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과 기자·작가 Jon Lee Anderson 대담에 다녀왔다. 작가들 쪽 프로그램에서는 본 사람들이 많아서 나머지 목록을 훑다가 반가워서 별 생각없이 예매한 것이었는데, 막상 그를 보고 얘기를 듣다보니까 그의 각 출연작을 볼 때의 나들이 생각나 감회가 새로워졌다.


시간 순으로 Y Tu Mamá También(<니 에미도>)가 처음이다. 고3 시절 우리들의 유일한 영화평 매체였던 세주를 비롯해,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친구들 중 일부가 유럽 영화들을 찾아보면서, 강원도 산골짜기에 씨네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스페인어과와 프랑스어과, Amores perros(<개 같은 사랑>)과 Amélie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압구정 스폰지하우스에 나름 독립영화로 「문화 생활」을 하겠다고 갔던 것이 2007년 봄이었다. 뭐 하는지 모르고 가서 그냥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수면의 과학>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1 프랑스어 2 성장판 닫혀 가는 남자 주인공 3 초현실·자각몽적 흐름 등 나의 주요 중2 포인트를 동시에 자극했다. 보고 나오는데 복도에 La mala educación(<나쁜 교육> 포스터가 걸려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이 포스터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찾아서 보니 같은 얼굴이 또 나왔다.

<나쁜 교육>은 그 당시에 본 영화 중에는 제법 세서 그 뒤 얼마간 한쪽으로 알모도바르를 다른 쪽으로 가르시아 베르날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Diarios de motocicleta(<오토바이 일기>)는 내가 처음으로 산 DVD가 되었고 신작을 볼 길이 있으면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내가 영화를 보기 시작한 때에 거의 동시에 유명해진 배우에게는 남다른 정이 붙기 마련이다. 서울에서도 뉴욕에서도 가르시아 베르날을 좋아한다고 하면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뉴욕에서 영화 공부한 무리와 친하게 된 이유의 몇 할은 이 배우가 나온 영화를 많이 봐 놔서일지도 모른다. 훗날 프랑스에서 최민식이 좋다는 친구들 만나면 딱 그 때의 내가 생각나곤 했다.

대학에서 <현대라틴문화>와 <이민자적 상상> 같은 수업을 듣는 동안 내가 이상하게 이 배우가 나온 작품만 집중적으로 봤다는 것을 다들 알아챘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대배치 받은 첫 날, 자기 소개하고 나서 불 끄고 모여서 선임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며 과자를 먹는 풍습을 행하던 그 날 밤에 최선임 형과 이 사람 영화 얘기를 하며 점수를 50점 정도 땄다. 그런 식으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


체 게바라를 두어 번 뒤집어쓴 탓도 있고 해서 멕시코 배우라기보다는 범라틴아메리카 배우로 알려져 있고, 최근 Ambulante A.C.라는 도큐멘터리 단체·영화제를 조직하는 등 라틴계 미국이민자들의 인권문제나 정치범죄 같은 화두를 던지는 활동을 간간히 하고 있다. 때문에 이 대담에서도 배우가 정치와 ‘예술’ 사이에 서는 지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고 급기야 청중 가운데 한 명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지형에 대한 총평을 묻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적당히 넘어갔지만, 몇몇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한동안 수다를 떨었다.) 그는 <수면의 과학> 주인공인 스테판이 요즘 뭐 하고 있을지 제일 궁금하다고도 했다.

  1. 하경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체 게바라가 너무 잘생겨서 위화감을 느꼈었어요ㅋㅋㅋㅋ 뭐 실제로도 워낙 미남이었다고 하지만요ㅎㅎ

  2. chloed

    라 말라 에듀카씨온 저도 07년에 봤는데! 스페인어 쌤이 알모도바르 영화 틀어주신 이후 쫓아서 보다가 거기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처음 본 거 같아요 제 동생도 이 배우 너무 좋아해서 스페인어 반 이름이 가엘ㅋㅋㅋㅋㅋㅋㅋ

  3. jeon soyoung

    저에게는 <나쁜교육>이 가장 ‘영화 같은’ 영화였고 <수면의 과학>의 스테판이 가장 ‘영화 같은’ 캐릭터라서 이 글이 정말 정말 좋네요. 특히 마지막 한 줄에서 괜히 흐뭇해집니다. 그리고 나쁜교육에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정말 대단했어요. 어마어마..

  4. 지나가는 사람1

    아마도 스테판은 일이 잘 풀렸다면, 소규모 스튜디오의 아트 디렉터가 되고 다른 여자와 결혼도 해서 아기 낳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지 않을까요. 아나면, 불교에 귀의했거나 다른 여자랑 결혼을 했다가 이혼한 상태이거나 보안이나 택배업체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요.

  5. 왕고구미

    우연히 잘읽지 않던 해외 드라마 소식을 읽다보니 잊고지낸 낯익은 얼굴이.. 검색하다 이곳까지 흘러 들어왔네요~ 참 멋있는 배우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