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에 살으리랏다. 1/2

Dekalb Brooklyn Public Library

지금 있는 브루클린 도서관에는 누가 싸왔는지 굉장히 맛있는, 감자전골 같은 냄새가 나는데 약간 추워진 날씨와 함께 이른 오후인데도 허기를 부추긴다. 정말 손바닥만한 도서관이다. 한쪽 벽에 잡지와 DVD가 소박하게 꽂혀 있고, 가운데 컴퓨터 여섯 대가 다닥다닥 붙었다. 아동서가 아닌 책들은 스무 개 정도 되는 책장에 드문드문 꽂혀있다. 시립도서관 특유의 채광과 높은 천장이 특히 좋아 뵌다. 머리를 세게 땋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흑인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끔 돼 있는 책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 놀이방이자 노인정인 동네 도서관 느낌이 많이 나는 곳이다. 다른 도서관에 비해 자전거 주차 경쟁도 없고, 오는 사람들이 적당히 방정맞은 것도 좋다.


책과 사람들 기운이 노릇노릇하게 퍼져 있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렸을 때에도 도서관에 잘 갔다. 독서실에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내가 한국에 살면서 거의 한 번도 가지 않은 삼대 시설이 독서실, PC방, 찜질방인데 특히 독서실은 어둡고 숨이 막혀서 있을 수가 없었다. 물론 독서실이 순전히 좋아서 가는 곳은 아니므로 안 간다고 안 갈 수 있었던 선택은 특권이지만, 공부를 해도 실제로 도서관에서 훨씬 잘 된다고 느꼈다.

Fairfax Regional Library

안양시립평촌도서관

민족사관고 도서관

공군사관학교 도서관에서 병사들이
독서의 나무에 뭘 매달고 있다

열두 살, 버지니아에 살던 해에 Fairfax 도서관에 자주 갔는데, 규모도 상당하고 돌이켜봐도 분위기가 탁월한 도서관이었다. (참고로 워싱턴 D.C. 외곽에 위치한 페어팩스는 고위공무원, 외교관 등 고소득·고학력 이민자들 위주로 도시가 형성되어 학교와 도서관에 예산이 팍팍 들어가는 곳으로 유명했고, 지난 십 년간 한 번도 미국 도서관 순위 10위권을 벗어난 적 없는 지역이다. 그러나 최근 (전국의 도서관들이 그렇듯) 상당한 규모의 재정 감축을 겪으면서 고생이 많다.) 동네 아기들이 바퀴 달린 수레에 빌린 책을 수십키로씩 싣고 나가는 그런 모습을 접하고는 나는 그만 미국은 이런 곳이구나 하고 생각해 버렸던 것이다. Arthur 같은 애니메이션을 비롯, 텔레비전에서 보던 호황기 미국의 풍요로운 가정과 말썽없는 다문화 학교의 기억을 그래서 간직하고 있다. 그 도서관은 천국이었다. 스무살 때 돌아가 봤을 때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는 안양시립평촌도서관 바로 코 앞에 살았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십 년 넘게 살았기 때문에, 거기는 정말 구석구석 속속들이 안다. 초등학교 때엔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나 시공사 전집 보느라 그 곳을 거의 삶의 터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내가 어디 갔는지 모르면 엄마가 도서관에 와서 만나곤 했다. 주말에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공부하다가 점심에 지하식당에서 만나는 식이었다. 중학교 시험 기간에 친구들이랑 몰려가서 공부 한 삼십 분 하고, 한 시간동안 이층에서 서로 외운 거 문제 내면서 한 시간 때우고, 또 삼십 분 공부하고 돈까스 먹고, 그 재미가 좋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독서실 끊는 친구가 많아지고, 도서관에서 같이 놀 친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것은 비율의 문제로, 내 친구가 점점 줄어든 것으로는 보아선 안 된다.

민사고 도서관은 매스컴도 많이 탔고 실제로 좋은 책들이 많은, 쓸 만한 도서관이었다. 그리고 나는 영자신문 편집을 맡게 되면서 사서실에 갈 일이 무척 많기도 했다. 당시 민사고는 사실 공부하는 장소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필 받으면 운동장에서도 하고 다리 위에 엎어져서도 하고, 또 필 안 받으면 도서관 전체가 숙면을 취하거나 와이파이 잘 터지는 피씨방으로 쓰이는 등 자유로웠기 때문에, 딱히 도서관에서 뭘 치열하게 했다는 기억은 없는 편이다.


복무부대로 공군사관학교를 내세울 만한 제일 큰 장점 중 하나가 생도교육을 위한 도서관이 있다는 것인데, 삼군 중 시설도 좋고 특히 원서와 멀티미디어 비율이 높은 편이다. 도서관이 속한 생도대대나 인접한 교수부 등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생도들보다도 도서관을 더 자주 활용한다다. 문화에 대한 절박함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밖에서 안 읽던 온갖 인문서도 읽고, 나가기 전에 이거라도 해 가자는 심정으로 실용서도 폭독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학과 교수들이 기증한 세계문학 (영어 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책도 제법 있었다) 장서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에서 배운 문학 작가들을 군대 가서 양껏 읽는 특수한 혜택을 누렸다. DVD 역시 신간과 영화제 수상작 위주로 들어오는 추세라서, 주말이면 부대원들이 각자 서넛씩 빌려온 영화들이 생활관마다 열개씩 쌓여 뭐 볼지 순서를 정해야 하곤 했다. 출입증 나오기 전 갓 들어온 신병 때, 점심먹고 와서 선임들 손잡고 와서 눈 휘둥그레져서 책 하나씩 빌리고, 괜찮은 선임이면 매점에서 뜨거운 고로케 하나 사 주기도 하고. 도서관에 어려서부터 살았던 것처럼 글을 썼지만, 솔직히 책이 그렇게 재밌는 줄은 군대에서 처음 알았다.

  1. unesperer

    부러운 성장 환경이네요. 김괜저님 필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이제 알겠어요ㅎㅎ

  2. serene

    arthur!! 나도 동생도 각자 아이디 만들어서 3주에 20권 빌릴 수 있는 것에 부자가 된 느낌이었는데
    소사 도서관은 1자습때라도 카메라를 피하는 방안으로 여겼던 기억이..
    세계문학 @.@

  3. 김괜저

    맞다 도서관에 그 용도가 있었지 …

  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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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괜저

    땡 큐
    앤 듀!

  6.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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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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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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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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