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맛있는 헤이즐넛 커피라는 것을 마셨다.

Culture Club : Karma Chameleon

오늘 아침 Grounded에 갔다. 일학년 때부터 세어 보면 아마 내가 가장 꾸준하게 가는 커피집일 것이다. 날씨가 추울수록 로스엔젤레스 기후를 유지하는 따뜻하고 습한 이 집 생각이 더 나는데, 이제 다른 곳에서는 찬 음료를 먹기 힘들다는 생각에 오늘 차가운 헤이즐넛 커피를 사서 맛보고 놀랐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진짜 헤이즐넛 콩 맛이 났다. (여기는 커피 맛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다) 마지판이나 마카롱에서 아몬드가 내는 것과 비슷한, 상쾌하고 박하가 생각나는 향이 있었다.

보통 어차피 싸구려인 커피를 마실 때 헤이즐넛을 마신다. 출근길 기차 환승역에서도 헤이즐넛 커피에 두유를 잔뜩 넣어서 싼 맛에 마시는 것이 최선이고, 회사 건너편 세븐일레븐에서도 헤이즐넛 커피에 낱개로 파는 백초콜릿 조각을 먹는 것이 그나마 나을 때가 많다. 당연히 커피를 잘 하는 곳에서 헤이즐넛 커피를 마셔야 할 이유는 없다. 오래된 콩을 재활용하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합성향과 용매가 들어가니 몸에 좋을 이유도 없다. 이처럼 존재 자체가 삼류인데 훌륭하게 해내니 대견했던 것이다.

며칠 전에 Lower East Side를 지나다가 도로가 갑자기 흙길로 바뀌는 것을 알아채고 보니 곧 시작할 연속극 촬영중이었다. 몇 블록 상가들 껍데기를 전부 갈아끼우고 각종 노점상과 마차 따위를 충실하게 재현해 놓은 꽤 큰 규모의 촬영이었다. 이 동네는 19·20세기 이주노동자들 역사로 먹고사는 건물들이 많은 만큼 일층 간판들만 조금 바꾸고 흙만 뿌리니 정말 옛날 느낌이 제대로 났다. 말들이 똥을 싸고, 수염을 붙인 단역들은 마차에 앉아 셀카를 찍었다. 한 할아버지가 촬영장 보조요원에게 말했다. 「그래 내가 1955년에 뉴욕에 처음 왔을 때 거의 딱 이런 모습이었지.」「이건 1901년인데요?」「그러니까 ‘거의’ 이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