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끈끈이를 붙이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동 트기 전에 일어나 Claire Vaye Watkins라는 작가의 단편소설 Ghosts, Cowboys를 읽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찰스 맨슨의 측근이었다고 하는데, 네바다 리노의 역사와 맨슨 패밀리에 대한 기록과 기억을 뭉쳐 스무 장 정도의 짧은, 반 자전적인 글로 짜낸 작품이다. 표면에 드러난 사건들을 나열하고 앞뒤로 역사와 당사자들의 기억들을 아무리 갖다붙여도 개인의 인생을 짓누르는 무게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을 표현했다.

사실이건 허구건 그 너머의 「진실」만 전달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소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말이다. 현실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 그걸 농축해서 이해한 진실도 바뀌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허구의 이야기지만 진실이 통했어요, 라는 얘기는 그냥 그 허구가 내가 아는 세상의 이치에 잘 맞아요 라는 뜻이다. 판타지나 공상과학 같은 철저한 허구는 오히려 그 아래 깔려 있는 친정현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비교적 투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현실의 껍데기를 가져다 작가 고유의 작동체계를 불어넣은 작품들을 읽으면 내 친구의 쌍둥이를 만났을 때처럼 친근함과 낯섬이 뒤섞인다. 사람들이 공히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 역사라든가 알려진 인물들, 나아가 우리가 아는 지역, 물건, 다른 작품들, 그런 것들을 말함으로써 작품 밖 현실에 끈끈이를 탁탁 붙이는 작품일수록 작가는 그런 끈끈이들의 위치를 잘 조절해서 두 세계 사이에 일어나는 굴절과 변형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다.

문예창작 워크샵이 있는 날이었다. David이란 친구가 쓴 작품이 도마에 올라왔다.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다같이 종이를 넘기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작품의 내용일랑, 초등학생인 주인공이 친구네 집에 놀러간 밤에 그 친구의 아홉 살배기 여동생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식칼로 제 배를 수 차례 찔러 자살하는데, 한참 뒤 그 부모들이 딸을 강간하고, 폭행하고, 아동야동 만드는 데 쓴 내막이 밝혀진다는 그런 것이었다. 소위 문예창작의 중2병 증상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성폭행, 자살, 유산 이런 것들이기 때문에, 글 자체의 짜임은 좋은 편이었음에도 다들 무리수라는 진단을 내렸다. 구체적인 세부 묘사에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나 역시 여자아이가 식칼로 할복을 한다는 부분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얘기가 끝나고, 선생님 Colson이 글쓴이에게 어떤 배경에서 나온 글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이게 사실 제가 열 살 때 겪었던 실제 경험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이면 많이들 끝장나는 경험을 해보길 꿈꾼다. 그런데 막상 끝장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은 실화입니다」라는 딱지 없이 그 여파를 전달하는 글을 만드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끝장나는 일이라봤자 강력범죄, 극기 체험 뭐 그런 데 맴도는데 그런 걸로 실력있는 상상가가 집에 앉아서 만들어 낸 전제를 이기기는 어렵고, 설령 이긴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작품 밖 세계와 의미있는 관계를 만드는 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인마였건, 친구 부모가 아동성범죄자건, 승부는 소재 밖에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