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동창들은 한강진에서 만났다.

대학교 친구 여럿이 동시에 서울을 방문하는 신기한 연말연시였다. Napoli(23세, 영어 강사)는 같은 강사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 말고는 마땅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나의 귀국을 가장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친구다. 그를 데리고 남대문 시장부터 동대문까지 같이 걸어주고, 서점에서 한국어 교재를 같이 살펴주고, 초 매운 맛 커리를 나눠먹어주었다. 광장 시장을 헤집고, 명동 성당 앞에서 방울차를 마시는 수염 난 그의 옆모습이 마치 올림픽 즈음해서 통일교 세미나 참석차 왔다가 서울에 눌러붙은 독일 청년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일본사를 전공한 우리 친구는 뼛속까지 친일파임을 기억하여야 하겠다. 왜냐 하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기 때문이다. 방울차는 맛이 없었다.

또 한 명의 방문객은 Morgan(25세, 뉴욕시 수녀회 사무직 근무)이었다. 두 명의 오빠들과 함께 서울에 왔는데, 내가 약속과는 달리 여러 곳을 많이 데리고 다니지는 못해 특히 미안했다. 뉴욕에서 워낙 자주 보는 친구라는 이유로 몇 번 보지도 못했다. 두 번째에는 교포 1.5세 친구인 Jenny와 함께 이태원에서 작년 마지막 날 저녁에 만났다. 뜨는 동네에서 새해를 맞겠다는 이들로 인산인해가 된 이태원 부근의 혼잡에도 세골목 술집은 평소의 복작복작한 여유로움을 자랑했다. 거기에서 맥주 두 잔씩 하고 나서, 날이 그리 춥지 않길래 병에 든 탄산주를 하나씩 사 들고 하얏트 언덕에 올라 그 계단에서 새 해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