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같이 먹을 커피를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본 글은 약간 픽션이오니 현실과 혼동하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흐린 날 아침 뉴브런즈윅 방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니 머리맡에 밤에 보던 영화가 일시정지로 열려 있고, 전기장판의 징징거리는 온기와 창문 세 짝에서 들어와 앉은 냉기가 미미한 비무장 지대를 두고 휴전한 채였다. 탁자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있는 노트북 옆에, 주먹만하게 봉긋 솟은 뭔가가 어스름한 빛을 받아 윤곽을 드러냈다. 컵케익인가, 브라우니인가, 흰 접시에 옆에 포크와 나이프까지 정갈히 모인 모습에 코를 킁킁거렸다. 저게 갑자기 어디서 났지. 옆방의 룸메이트는 고등학교에서 밴드부 강사로 일하느라 새벽 여섯시면 나가고 없다. 혹시 단 걸 사서 먹고 남아서 하나 갖다줬나? 부엌에 두면 될 걸 왜 여기에 갖다놓았지. 수저까지 챙긴 것을 보니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생일이라 파티를 했나? 별 소리 못 들었는데.

만난지 얼마 안 된 룸메이트라 서로에 대해 직업은 뭔지 어떤 다큐멘터리 좋아하는지 방 온도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 정도밖에 모르지만, 또 하나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면 그가 음악하는 친구치고도 약초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온 집안이 약초 태운 연기로 빡빡하다. 룸메이트가 떨초 태운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 냄새를 별로 싫어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나부터 쓴내 나는 향을 방에 피워놓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퇴근해서 피곤을 업고 집에 들어섰을 때 나른하고 평화로운 냄새가 나는 것이 오히려 좋다. 나까지 입맛이 도는 것 같다. 밤중에 부엌을 뒤지는 이 친구와 마주칠 때 나누는 대화들은 모두 그의 머리속엔 거울에 김 쏘아 쓴 글씨처럼 금새 날아가버리는 것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

지난 주말에 베드스타이에 사는 다른 친구네에 다녀왔었다. 마침 그는 학창 시절부터 열심히 최고급 약초 유통에 종사한 결과 현재 본업보다 배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그런 친구였다. 그 친구와 같이 사는 이는 직업이 요리사인데, 두 명이 합작을 해서 약초 요리 전문 배달서비스를 구상중이라고 귀띔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지않아도 나는 요새 일급셰프들이 약초를 원재료로도 쓰고, 성분만 채취해서도 쓰고, 가니쉬로도 쓰고 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얘기를 여기저기서 접한 터였다. 룸메이트가 관심을 가질 얘기일 것 같아 방에 돌아와 이 얘기를 해 줬더니, 아니나다를까 멋있다며 흥분했다. 그리고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나면 뭐라도 하나 사다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친구와 두세 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인데 세 달 후면 방을 바꿀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약속까지는 아니고 기회가 닿으면 그러마 했다. 룸메이트는 자기도 믹스 사다가 오랜만에 약초 브라우니를 굽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나는 다시 탁자 위에 놓인 브라우니를 바라보았다. 다짐한 지 하루만에 실행에 옮기다니 추진력 있는 친구구나. 접시까지 곱게 준비해 놓은 걸 보니 정말 뿌듯했나보다 싶어 픽 웃음이 나왔다. 정성은 고맙지만 출근 전 아침으로 이걸 먹는 건 좀 그런데.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베드스타이 친구 제품 배달이라도 해 줘야 되나? 딜러도 아니고 약 셔틀 노릇을 하려면 수수료를 좀 세게 받아야 할 텐데⋯⋯.

나는 같이 먹을 커피를 끓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전기장판을 눌러 껐다. 일어나 자세히 보니 브라우니가 아니고 어제 먹다 남아 뒤집어 놓은 아보카도 반쪽이었다.

  1. 떡잎

    오와, 읽는 제가 다 약초 태우는 기분이었는데 이런 반전.

  2. 김괜저

    블로그도 4D가 되면 좋을 텐데 …

  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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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김괜저

    이걸 이제야 봤네 … 힘내고 있을 수 있지? 심난함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5.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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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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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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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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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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