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갈아탈 수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두 집 살림을 했다. 부시윅 본가를 두고 뉴브런즈윅 직장 근처에 방을 하나 잡았다. 집에서 집은 두 시간이다. 일이 많은 주에는 일주일에 네 번까지도 왔다갔다한다. 하도 굴러다녀서 몸에 기스가 많이 갔다. 외투도 찢어졌다. 찢어진 외투는 이 년 전에 산 것인데, 안에 패딩 같은 것을 껴입다 보니 주머니 옆선이 투두둑 나갔다. 수선을 하는 김에 주머니 안쪽 찢어진 것도 손보려고 하는데, 그대로 봉하는 대신 천을 새로 대서 아이패드가 들어가는 넓은 주머니로 개조할 계획이다.

뉴욕에 있는 것은 주말 아니면 특별한 날이 있는 평일 저녁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약속도 활동도 그 쪽으로 몰려 와글거린다. J와 만나는 것을 상수로 두고 나머지를 채워넣는다. 일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지만 결정할 것들이 많아 조금 조급해질 때도 있다. 개인적인 여유가 없을 때 일을 하면서 여유가 허락된 프로젝트에만 가능한 수준의 안정성을 기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서 양쪽 일 모두의 불안요소보다는 안정요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편도 십삼 달러짜리 통근기차는 다른 일 없이 생각이란 것에 골몰할 수 있게 하는 비싸고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내가 남과 비교해 불안을 많이 느끼는 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불안을 느낄 때에는 어떤 증세로 나타나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내가 삶에 트랙 (일 1, 2, 3, 창작 1, 2, 3, 친목, 생활완성, ‘판옵티콘’ 등)을 최대한 멀티로 마련해 놓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불안이나 조급함, 무료함 등으로 하나의 트랙에 잡음이 생기면 잽싸게 다른 트랙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물론 난 이렇게 멀티트랙이야, 자신있어, 이런 얄팍한 수준의 확신을 갖고 씩씩하게 쳇바퀴 도는 스스로의 모습을 판옵티콘 트랙에서 한 번 다시 씁쓸하게 재생해야 완성되는 그런 해결법이다.

그리고 가끔은 다 필요없고 그냥 찬 바람을 쐰다.

  1. isotropos

    멀티 트랙 비유 매우 와 닿네요. 치고빠지기, 다각형 무게중심잡기, 수동초점모드; 제가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들의 유사/연관표현 같아서 재밌습니다..

  2.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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