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내놨다.

향후 1년 주거계획이 대강 나왔기에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첫걸음으로 부쉬윅 방을 내놓게 되었다. 지난달에 아는 사람들에게는 광고를 했었는데, 아예 방을 넘길지 서브렛을 줄 지 결정이 흐릿한 상태에서 사람을 찾았더니 다 흐지부지되어버렸다. 이번에는 모든 조건을 확실히 정하고 나서 바로 크랙스리스트에 올렸다. 사진 덕을 봤는지 이틀만에 반백명이 연락해왔다. 부쉬윅이다보니 저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소개보다는 저 재밌는 거 하는 사람이라는 은근한 자랑이 다양하게 들어있어서 읽으며 무척 재미있었다. 소설에 바로 쓰면 되는 완성된 인물들도 많아서 가짜로라도 가끔 광고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 열 명을 추려서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십 분 간격으로 집에 불렀다. 사진작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을 좀 많이 불렀는데, 내가 만들어놓은 가구들을 그대로 물려받고 싶어할 만 한 사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목이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내 작업을 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재수없단 건 알지만, 계속 놀러올 집이므로 내가 투자한 공간을 제대로 활용할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다행히 방문한 열 명 모두 방을 마음에 들어했고, 심지어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마지막 방문객을 보내고 괜히 진이 빠져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세 시간 저녁잠을 잤다. 일어나니 열 시 정도인데 기분이 무척 좋길래 Grand Budapest Hotel을 보러 갔다. 초콜렛 우유 마시면서 낄낄대며 보고, 산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손가락 나오는 장갑은 깜빡하고 두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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