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가기가 싫었다.

이발실 김상병님도, 세이토코모 살롱의 료스케상도 바꾸지 못한 나의 가르마를 근 사흘간의 강풍은 하루에도 서너번씩 바꿔놓는다. 궁해서 이번달은 머리를 그냥 두었다. 대신 모자를 샀으니 돈을 아끼려던 계획은 도루묵이지만, 포도주색 챙이 마음에 든다.

지난달 친구 BW가 연초에 비밀리에 연락해왔다. 앤아버에 여자친구 몰래 날아가 깜짝 청혼을 하려는데 사진을 부탁해도 되겠냐 했다. 이런 일에 딱 좋은 렌즈를 집에 두고 왔다는 걱정은 있었지만 이 친구 특유의 진정성과 철저한 준비성에 감탄하며 2월의 한 주말에 미시건으로 갔다. 다행히 무사히 촬영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오 년만에 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미친 것 같은 퀄리티의 AirBnB에서 묵었다. 수백권의 소설과 인문서, 벽장 가득한 DVD, 머리맡에 초코렛, 냉장고엔 일인분 아침식사에, 커피와 맥주가 종류별로. 나가기가 싫었다.

  1. K

    아이니. 방이 너무 .색이 너무.

  2. 이쌩

    유독 사진이 더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