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픔의 바다에 좌초되면 못 쓴다.

덧붙임 : 이 글은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 나오는 글이지만, 모두가 겪는 방식을 종합한 총평은 아닙니다. 놓치고 있는 시각이 있으면 첨언해주시면 됩니다. ‘공감 교육 사라진 사회’라는 요지의 글과 비교해서 소개한 분이 계신 것으로 아는데, 이 글은 공감하되 탐닉(indulgence)에 빠지지 않기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시간이 빠르다. 친구들 생일이 정신없이 돌아온다. 하루에 보는 트위터 타임라인 길이가 몇 미터쯤 될까 궁금해졌다. 일도 많이 하고 있다. 이사도 끝냈다.

뉴악에서 같이 방을 구할 사람을 Craigslist 통해 만났다. 나이도 비슷하고, 동네를 나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이라 잘 만났다 싶다. 게다가 나와 마찬가지로 부쉬윅에 살다가 뉴악으로 나오는 처지였다. 수십 분 만에 제법 친해져서, 첫 집주인을 만나서는 오랜 친구 행세를 했다.

세월호 침몰 및 구조실패 사건 때문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다이나믹하다. 이제는 사건 자체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보다, 거기에서 발생한 애도 또는 분노 등의 불이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에 옮겨붙은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페이스북도 좁고 트위터도 좁긴 하지만, 어쨌든 전국민이 뭔가에 반응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원시적으로나마 <한국은 어디에 있나> 같은 연구주제에 대한 자료가 들어오는 것으로 보고 열심히 모으고, 나 역시 여러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참사에서 비통한 감정만 추려내어, 스스로를 상 당한 사람으로 설정하고 애도하는 것만이 도리라 믿는 것은 내현적 자기애(covert narcissism) 증상일 수 있다. 같이 곡소리만 낼 것이 아니라, 가까운 한 명은 부축을 하고 한 명은 나가서 대책을 마련하고, 나머지 멀리 있는 이들은 평상의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며 상황을 똑바로 파악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평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같이 무너져내리자고 하는 사람들의 첫째 폭력성 둘째 위선(실제 자기 삶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므로)에 등을 돌리면서 느낄 죄책감은 없다.

내 감정의 폭, 공감 능력을 과시하는 방식으로 이 비극을 착취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아무리 선한 충동에서라도, 아니다.

  1. infatuation

    공감하고갑니다

  2. 루이레이

    흠. 감성불구자보단 감성팔이에 한 표. 혹여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3. 김괜저

    정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루이레이

    예전엔 상가집에 가면 멀쩡히 앉아 있다가도 조문객이 오면,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는 사람이 있었죠. 굉장히 형식적인 울음인데, 울고 싶을 때 빰 때려준다고, 이렇게 먼저 누군가 울어주면, 내 슬픔을 내보여도 괜찮고, 여차하면 얼싸안고 울어도 흉되지 않죠.
    제 말은 공감능력 과시가 되었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름팔기를 하던, 동감하는 척이라도 하는 감성팔이에, 내 가족이 내 주변과 상관없다고 무감각해하거나, 저런 미개한 것들이란 비아냥거림으로 분노를 사는 고매한 감성불구자들보다는 오히려 한 표를 주고 싶다는 이야기였어요.
    슬픔도 세련되고 쿨하게 넘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얼싸안고 아이고아이고 눈물 한 바가지 흘리면 조금 상처가 아문 것처럼 느껴지는 미개한 궁민들이거든요.
    첨언하자면, 모두 똑같이 곡소리를 해야한다, 하자는 소리 아닙니다. =.= 너 감성불구? 뭐 이런 비아냥도 아니고.

  5. 름름이

    지나가다 잠시 기웃거릴게요. 감성팔이 아님 감성불구자 라는 이분법적인 분류가 바로 김괜저님이 지적하시는 부분이 아닐까요. 사회에서 전체주의적 슬픔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을 감성불구자라고 비난을 하니까, 슬픔의 동참이 어느 순간 과시적인 것으로 변해버렸나 싶지 않아요. 특히 사고가 난지 일주일도 족히 넘은 이 시점에 말이에요. 단적인 예로 몇개월간 준비해오던 음악 행사 뷰리풀 민트 라이프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취소되었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생업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요. 이런 전체주의적 애도의 강요는 오히려 폭력적인 것 같습니다.

  6. 루이레이

    그러게요. 죽은 사람만 불쌍한거고, 산 사람은 살아가는 게 맞는거죠. 분노가 뭐임? 먹는 거임? 연대는 웬 고조선단어임? 자기검열이 지나쳐 감정불구 감성표현불능자로 살아야 튀지도 않고 모나지 않은 돌로 인식되어 저같은 길고 가늘게 날품팔이하며 사는 무채색으로 살아야 하는 인간들에겐 딱 맞는 방식인데 말이죠. 단시안적이고, 이기적으로 살아야 겨우 따라가는데. 시간낭비, 돈낭비, 감정낭비. 아, 촌스럽게. 나 아니면 다 남이고, 남일인건데, 어머머 불쌍하다 비행기타고 가지 왜 싸구려 배를!! 해버리면 되는 걸. 암요, 소비로 나를 표현하는 시대에, 소비나 고심하면 되지, 이런 일에 미안이나 분노같은 걸 느끼는 건, 그걸 무려 남에게 보이며 과시하는 건, 자기검열기제를 오프한 감정초과잉이죠.

  7. 김괜저

    네, 두 분의 대화에 답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8. polly

    공감 능력의 과시라는 용어가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 같은데 공감 능력과 과도한 자기 투사를 구분해서 용어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있는 지적들이 공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9. 김괜저

    감사합니다. 필요한 공감 능력을 가진다는 것과 난 그런 게 있어 하고 과시하는 것을 구분해서 지적했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믿습니다.

  10. sooon

    ‘공감’이라기 보다는 엄청 리얼하게 슬픈 영화를 ‘감상’하며 인물들에 지나친 감정 이입을 해대는 관객같은 느낌이 더 큰것 같습니다. 남의 일이니까 마음 껏 타자화한 상태에서 감상하는 듯한 그 자유로운 감성의 표출이 못내 보기 낯부끄럽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감성의 표출은 어쨌든 스트레스 상태의 마음을 푸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 큰 문제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공연을 다 취소해버린다느니 식으로 애도를 강요하는 행태는 잘못되었다 생각합니다.

  11. 김괜저

    슬픔을 분출할 길이 필요한 것과 그것을 모두가 합심할 일로 여기는 것의 차이겠죠.

  12. 호!

    느낌으로나마 감지하고 있던바를 정리도 하지 못하고 지나치는가 싶던 참에 이런글을 만나서 기쁘네요. 공부하자 으랏샤

  1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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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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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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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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