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망다닌다.

가상계에서건 실물계에서건 말이 많은 편이지만, 본심을 껍데기 말로 둘둘 싸서 위장하는 비겁한 성격이기 때문에 종종 변덕스런 혈당처럼 센치함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감상에 빠지는 내 모습을 두고보지 못하는 편인지라, 감정의 맥을 짚어 제대로 진단하는 대신 단지 몸을 바쁘게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진통제만 처방하곤 한다. 그러니 요즘같이 감정이 응답할 건이 많은 날에는 마음 속 전등이 위태롭게 깜빡인다.

일단, 좋아진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화제를 전환—신바람나는 입주의 꿈에 부풀어 있었던 그 아파트를 놓치고 말았다. 빨리 결정이 났었더라면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입주가 거의 확실시되었던 며칠동안만큼은 최근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던 인생불확실성을 한방에 잠재우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만큼 실망도 컸다. 앞으로 일주일 내에 더 훌륭한 집을 찾아야 한다.

본 직장의 경우, 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적, 사적 이유로 멘붕할 일이 많은 사람과 상시 주파수를 맞추며 일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내가 적정수준 이상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나 역시 사적 영역에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사소하지 않은 일들이 최근 며칠에 겹침에 따라 압력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이번 주말동안 김을 다 빼서 확실한 영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구글 드라이브를 돌리는 방식으로 내 감정 리소스를 돌려서는 곤란하다. 비밀인데 나는 인간이니까여…….

한편 주말사업의 경우 직전 글에서 얘기한 바 있듯 옛 동료와의 갈등이란 고전적인 형태로 장차 사보에 남을 곤란함을 처음으로 겪게 되었는데, 이 역시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단면이 매끄럽게 마무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에 관해서도 생각할 일이 많아졌다. 그와 동시에 앱을 만드는 우리 사업의 궤적에서 내 역할 중 하나인 프론트엔드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중요해지는 시점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업무 역시 많아졌다. 이번 주말은 그래서 오랜만에 J네 집에서 묵기로 했다.

서로의 비슷한 면들에 탐복하며 최근 빠르게 친분이 쌓인 H 님의 무리수에 가까울 정도인 적극적인 배려로 이번 주 동안 일을 하나 같이하게 되었다. (평소에 작업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견제만 있고 건강한 종류의 당김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이야기하던 H님이 그 의식을 실천으로 옮긴 속도에 나는 탄복하고 있다.)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인사와 관련된 일이라 팬심어린 긴장을 유지하던 차에 다른 변수들이 끼어들어 현재 결론이 불투명한데, 어떻게든 잘 마무리됐으면! 이 마음 굴뚝 같다.

  1. 이정훈

    앱을 만드시는 일을 하시나봐요, 김괜저님이 만든, 만들, 콘텐츠가 정말 기대되요,,
    전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에 아직 관심만 있는 인문학도라 생각해서 이 블로그에 자주 들립니다.

  2. B급

    블로그 잘 보고 있어요. 하는 일은 잘 풀리고, 좋아진 사람에게서는 달아나지는 않으시길!

  3.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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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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