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월이 잘 갔다고 생각했다.

잘 갔다, 오월. 그렇게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좋은 일도 많고 실망스런 일도 많고, 연속극이라면 종방을 찍기 좋은 시간들이었다. 금방 올렸다시피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다. 그리고 졸업을 했는데 나와 같이 졸업한 군대 동기가 동년배 유학생들이 많이 모인 모임에 나를 두 차례 불러줌으로서, 칠 년 전 여름 내 생일날 밤에 강남역에서 <뉴욕대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해 3차까지 달리고 나서 모르는 사람의 가슴팍에 몹쓸 짓을 한 이후 유학생 동창사회를 등한시한 채 살아온 나의 대학시절에 적절한 수미쌍관을 만들어주었다. 한편 좋은 친구는 서부로 떠났다.

사업도 큰 고비를 하나 넘겼고, 이제 정말 깃을 세우고 앞으로 달려나가야하는 지점에 섰다. 본 직장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내 어깨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에 이르렀지만, 여름을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내년에 나를 먹여살릴 수도 있는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집, 새로운 도시로 이사한다. 이 모든 것이 오월이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찔하다. 저 정도 밀도로 인생을 살고 있는 나에 대해서 결코 우쭐함만 느낄 수는 없을 정도로 고주파수로 휘청거리기도 했기 때문에 막 건너온 외다리 불타는 걸 보는 듯한 심정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 잠깐 나갔다 올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좋았다.

출장차 온 강철도시 피츠버그에서 이렇게 오월을 보낸다. <매드 맨> 7-1기 마지막회를 보며, 머리를 비우고 배를 채우며 날아서 왔다. 모르는 사람만 있고, 아직 아무런 추억도 깃들어있지 않은 곳에 대한 고마움. 하늘과 지는 태양 같은 것에 변함없이 놀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자신감. 속을 비우려면 몸통을 기울고 뒤집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보증하는 어떤 종류의 인생사적 만유인력. 그런 것들을 주섬주섬 담는 중이다.

  1.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2.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

  3. 아무개

    비공개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