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이후드를 좋게 봤다.

친구 리사와 앤드류가 봄여름을 바친 BAM Cinefast 개막행사이자 Richard Linklater 감독이 십 이년 동안 찍은 새 영화 Boyhood의 뉴욕 프리미어에 갔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올해의 영화였다.

주인공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담은 이 영화는 깔끔하게 잘 쓴 이야기에서 출발해 결국 쓰는이가 보일락말락해지는 곳까지 투명해진다. 클리셰를 무조건 피할 수도 있지만, 노력을 지불해 소유권을 따낼 수도 있음을 온 몸으로 보여 준다. 각 장면마다 「어떻게 만들었지」를 신경 쓰느라 몰입하지 못할까 걱정했던 것은 완전히 기우였다. 세 시간동안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유년기를 통째로 다시 살게 한 뒤, 지금의 자리로 딱 하고 되돌려놓는 영화—이런 영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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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면들을 떼어놓고, 연기와 대사를 한 줄씩 살펴보면 실소가 나오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십 이년 간 영화를 찍는 일에 이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임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2002년의 약속에 2014년의 감독이 기꺼이 책임을 지고 있다니.

2000년대 일부를 미국에서 보낸 내 경우엔 즐길 게 더 많았다. 무척 적극적으로 시대성을 끼얹아서 때때로 현대판 사극 같기도 하지만, 역시 그 선택들이 현재진행형이었다는 것 때문에 <응답하라> 효과는 잘 조절됐다.

이보다 앞서 일요일에 본 영화 HellionBoyhood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IFC 배급에 한 소년이 텍사스에서 부모의 이혼 후 비틀거리며 성장한다는 내용이지만, 전자는 아역의 엄청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선댄스적인 영화’ 이상은 아니었다. 반면 이 영화의 아역들은 초반에 연기 참 잘 하는 스타킹 출연자들 같았지만, 커 가면서 더 이상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연기고희 의 지경에 든다. 물론 이 인상은 시사회 후 곧바로 배우들의 지금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는 화면 속 모습 그대로 어색하게 혼자 로비를 어슬렁거렸다. 매기 질렌할이 와서 인사를 건네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건물을 얼마나 벗어나야 영화가 비로소 끝날지 궁금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