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속에 한 시간 늦었다.

뉴욕에서 만나서 알게 된 후배 Nati 그리고 학교에서 친했는데 졸업하고 볼 일이 없었던 후배 Gigi와 이스트빌리지에 있는 우크라이나 음식점에서 아점을 먹기 위해 전철을 타고 맨해튼으로 나갔다. 이 날은 뉴욕 프라이드 축제가 있는 당일이라, 거기 가려고 꽃단장하고 한껏 흥에 찬 청소년들로 전철은 휘청거렸다. 그 와중에 공들여 여장을 한 한 초우량 아가씨가 급기야 자전거에 치마가 걸려 크게 넘어지면서 120도 공중 회전을 하고 나라 망하는 굉음과 함께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녀를 도와 전철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데에만 삼십 분은 족히 걸렸다. (그녀는 실려나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아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미 약속시간을 삼십 분 쯤 지난 시각, 전철은 여느 때처럼 나를 웨스트빌리지에 뱉어놓았다. 그런데 거긴 행진이 한창인 한복판이라 거리에 인파가 가득해 도저히 5번가를 가로지를 수 없었다. 결국 두 친구를 한 시간 기다리게 해 버렸다.


날이 끔찍히 더웠다. 행진은 느릿느릿했고 사람들은 적당히 박수를 쳤다. 뉴욕 프라이드에서 이제 뭘 한다고 해서 놀라거나 화제가 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뿌에르또리깐 퍼레이드와 비교해도 비장미가 없었다. 나는 마침 사진기가 있어서 좀 LIFE지스러운 사진을 만들어려 애를 썼지만 아예 불가능했다. 그냥 안녕~ 하면서 다들 지나갔다. 무척 해맑고 행복이 가득한, 그러나 엣지는 제로인 그런 프라이드 축제였다. LGBT가 그간 이룬 국제적인 성과의 풍족함 위에서 ‘진영’으로서의 뾰족함을 빠르게 잃어버리는 모습이었다. 이 전 단계, 전전 단계도 생경하게 느낄 사람들이 사는 곳과 여기를 오가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격차가 주는 느낌들을 가지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뉴욕 프라이드의 본거지인 웨스트 빌리지 한복판의 블리커 가 샵들에 신상이 들어오면 바로 그 날 수백 명의 한국인의 눈에 띄고, 그 중에는 바이어도 많아 해당 트렌드는 늦어도 일 년 뒤면 압구정에 틀림없이 들어온다. 뉴욕에서 맛있다는 음식점들도 가게 이름까지 통째로 카피되어 우후죽순 생기는 모습에 들어갈 때마다 놀란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트렌드가 끝나도록 좀처럼 수입이 안 된다.


  1. hanbi

    어떤 카메라를 쓰시나요? 색감이 정말 좋네요.

  2. 김괜저

    니콘 D300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