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따로 또 같이 배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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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추수감사절 주간을 보내는 중이다. 친구들과의 추수감사절 저녁은 이미 이 주 전으로 당겨서 해치웠다. 각자 음식을 해 와서 나눠먹는 팟럭이었는데 무려 40여명이 제각각 음식 한바구니씩 가져오는 대규모 팟럭이었다. 역시 제시카와 카일의 잔치력은 알아줘야 한다. 나는 냉동실에 잠자고 있던 대구살 세 점을 쓰기로 했다. 접시에 숙주나물을 깔고, 생선 위에 쪽파 왕창, 마지막으로 간장과 레몬즙이 주가 된 양념을 끼얹고 포일로 덮어 오븐에 쪘다. 추수감사절 메뉴를 비껴가면서도 뜨끈하고 나눠먹기 좋은 게 딱이었다. 인스타그램 요리사를 여럿 배출한 무리답게 솜씨좋게 구운 양고기 어깻살 같은 본격적인 음식들이 푸짐히 차려졌다.

대신 추수감사절 당일인 목요일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어항 속의 모랫덩이처럼 가만가만히 보냈다. 아무리 신경써도 정리가 되지 않는 옷장 미닫이문을 아예 뜯어내고 속을 뒤집었다. 여름 옷을 다 빼내고 옷걸이를 다시금 헐렁하게 비웠다. 나 혼자 먹을 요량으로 볼로네제를 만들었다. 요새 소고기를 안 먹는 관계로 일반 돼지고기에 판체타를 섞고 토마토 페이스트와 야채 육수, 발사믹 식초로 오랫동안 졸여서 진득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있고 재료가 있으니 실험보다는 어떻게 만들어도 맛없기 힘든 것을 만들고 싶었다. 결과는 당연히 1입방밀리미터당 농축된 맛이 폭발하는 우마미 가득한 쏘오-스. 혼자 밀렸던 텔레비전 보면서 먹고 입가심으로 망고(홍시를 먹으려고 했는데 간만에 사온 미국 홍시가 너무 떫어서)까지 먹고 배 두드렸다. 밀린 일은 오늘, 금요일부터. 배가 꺼져야 일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