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통제실 업무가 마비됐다.

나는 만사본인결정설에 의거, 누구를 만날 때 내가 어떤 태도로, 얼마나 큰 나의 조각을 내어주는지에 따라 그 관계가 정해진다고 생각하곤 했다. 실제로 작년 한 해동안 나는 철저하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감정을 할당하듯 재서 나눠주었고, 모든 유사연애와 우정과 기타의 친분관계가 내가 부담할 수 있는 무게를 제멋대로 넘어서는 일이 없었다. 변수가 워낙 많은 삶을 구상해놓고 있었던 것 때문에 함부로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결과 중 하나는 물론 본격 연애하지 않는 생활이었다. 나와 작년에 사는 얘기를 제일 많이 한 사람이 아마 H 형일텐데 그는 (그가 보기에) 나처럼 살면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할 때가 많았다. 그는 내가 감정의 사고를 당하고 가던 길을 확 헝클어버리는 일을 겪어보기에 제격인 시절을 다른 데 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시절을 사용하는 내 방식이 치밀하고 견고하며 무엇보다 지속가능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얼마간 계속될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 최근 난데없이 사고를 당했다. 통제실 업무가 마비됐다. 누구에게 빠지고, 누가 내게 빠지고, 피차 만나고 간 보다가 물이 끓기 전에 헤어지는 일은 많았지만, 이처럼 양쪽 다 예상하지 않았는데 쌍방 과실로 추돌한 것은 처음이었다. 오히려 만남의 끝이 빤히 보이는,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항공사 데이터베이스에 한 쌍의 출국일로 기록되어있는 형편이어서 우리 둘 다 적극적으로 선을 그으려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지금 그래서 약간 에라 모르겠다 싶은 상황이 되었다. 그냥 이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하지 않고 이게 어떤 상황인지 몹쓸 비유만 수십 개 들고 싶은 기분이다. 나는 비유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단언컨대 온종일 그러고 있을 수 있단 말이다.

  1. baftera

    아니 이 글에 댓글이 하나도 없어도 된다는 말입니까. 아무도 안궁금한건가요! 그렇다고 묻지는 않을것입니다만.. 다만 새소식을 기다릴뿐!
    아무쪼록 괜저님의 앞날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1. 김괜저

      감사합니다. 왜 아무도 몰라주나 슬퍼지고 있었는데 ㅜㅜ

  2. sony

    마지막 문단은 시심 이라는 것의 좋은 정의 같아요

    1. 김괜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