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흠잡을 데 없는 수치를 겪었다. (2.5/3)

나는 웃으며 일어나려 했다. 시라는 마치 포기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같이 웃더니, 혹시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바로 지난 주에 한국 연예인 손님이 한 명 왔는데 누군지 아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내가 잘 모르는 아이돌 누가 왔었겠지 싶어서 시큰둥하게 있는데, 그가 내민 핸드폰 사진에는 의외의 인물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FOREVER FLAWLESS 쇼핑백을 내밀고 있었다. 신하균이었다. 지금은 안 본 지 오래라 모르지만 예전엔 남자 피부 하면 신하균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걸 바르면 신하균 피부처럼 될 수 있어, 시라는 말없이 그렇게 속삭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돈이 없으니 가겠다. 그러자 시라는 짐짓 머뭇거리더니, 합쳐서 이십팔만 원인 각질제거제와 세안제 둘을 이십만원에 주겠다 했다. 내가 아는 화장품 전문가 친구에게 상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자 가격은 십오만 원으로 내려갔다. 그래도 내가 일어서려고 하자 그는 계산대에서 이것저것을 확인해보는 시늉을 하더니 보습크림까지 몽땅 같이 십오만 원에 주겠노라고, 대신 자기 개인이메일로 사용 후기를 남겨달라고 말했다. 처음에 제시한 금액의 삼분의 일 가격이었다.

나는 갑자기 신하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처음 시라에게 손목을 덥석 잡힐 때에는 내가 여기에서 돈 한푼이라도 쓰게 만드는 건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나를 이토록 위태롭게 만든 것의 팔할은 신하균의 피부인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찌뿌둥한 밤을 보내고 끈끈한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던 나를 다이아몬드 가루가 든 신하균 크림이 그렇게 굴복시켰다. 결재하는 동안 내 친구를 닮은 시라는 쉴 새 없이 정말 굳 밸류라고 재잘거렸다. 굳 밸류인지 네가 알기나 해, 중학생 때 나에게 신하균 피부가 어떤 의미였는지 네가 알기나 해. 십만 원 넘게 쓰면 오는 문자가 띵 소리와 함께 도착했다.

shksmile
  • 라팜팜파

    칸쵸가 먹고싶어서 글을 검색하다가 … 재밌는 글 보고갑니다 자주 즐기러오겠습니다 페이지도 너무 예뻐용

    • 김괜저

      고맙습니다. 칸쵸가 또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