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악에서 보낸 일 년이 저물고 있다. 그와 함께 졸업 직후의 학생-잔상 신분도 끝난다. 사실 공식적인 학생신분 유예 기간은 봄에 진작 끝났으나, 이번 세 달을 수습기간으로 보충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야 제대로 선을 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선은 선이라고 하기에는 뿌옇고 흐렸었다. 이렇게 몇 달을 되돌아보려고 키보드에 손을 올리니까 그걸 넘어왔다는 것이 보인다. 요즘은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화면은 옅은 회색으로 비우고 인공 바람 소리로 귀를 틀어막은 상태로 생각을 한다. 어디서든 가능하다.
뉴악에서 보낸 일 년은 내 인생을 매드맥스같이 굵은 선으로 쫙 뻗는 서사로 상상하고픈 유아적인 욕심에 제동이 걸린 해였다. 하고 싶고 잘 하는 것들을 계속 하면 될 것이라는 자신감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 있는 구멍에 들어갈 기회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일에 필요한 노력의 양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비유는 여기서 그치고 그게 무슨 소리인지 똑똑히 얘기해보자. (귀찮은 일이다)
나는 대학을 사회학 전공, 프랑스어와 문예창작 복수 부전공으로 마쳤지만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디지털 디자인(으로밖에 묶이지 않는 이러저러한 관심사들)이다. 그러나 이민법상 내게 고용비자 후원을 해주려는 회사는 내 전공인 사회학 관련된 직책에 나를 불러줘야 한다. 그래서 일찍부터 사회학과 디지털 디자인을 접목할 수 있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크라우드매핑 관련한 웹・모바일 솔루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많은 대학들과 사회학・공공의료 관련 연구도 하는 일종의 컨설팅 회사였다. 웬만한 가족만한 작은 회사였다.
이 곳에서 시간제를 포함하면 총 삼 년동안 내가 손을 댄 (심지어 책임진) 분야만 해도 디자인, 마케팅, 웹/앱 프로그래밍, 퍼블리싱, 카피라이팅, 데이터 분석, 판촉 등 한 손에 못 꼽는다. 배운 것이 정말 많다. 내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곳이었고 분야가 유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직상의 미래는 밝지 않은 곳이었다. ‘디자인을 가끔 하는 인구학적 데이터 연구원’ 이런 식으로 직책명을 잘 조정해 비자 신청을 하려던 직전에 그만두었다. 비자를 받게 되더라도 같은 직장, 같은 상황에 묶이게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이 그 흐릿한 선의 심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저 적당한 것으로 비교적 빠른 결과를 얻으려는 셈을 그만두고, 조금 더 걸리더라도 정말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길로 가기로 한 것이라고 일단은 포장해두고 싶다.
다사다난이 능수능란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눈에 선한 글이네요. 응원합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