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씨네필들과 어울리던 시절 친구들과 놀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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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 캐롤이 미국 시민권을 받는 날이어서 뻔한 방식으로 축하해주려고 자유의 여신상 가는 배 타는 곳으로 친구들이 모였다. 우리는 여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열여섯 살 때 가 보고 한 번도 안 가 본 자유의 여신상이었기 때문에 내심 기뻤다. 그런데 막상 뱃삯을 확인해 보니 자유도까지 가는 것 따로, 가서 동상 내부에 들어가는 것 따로, 머리통에 들어가는 것 따로 이런 식으로 책정돼 있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어차피 다들 브루클린으로 돌아가야 하는 형편이고 하니까 그냥 레드 훅으로 가는 이케아 셔틀선을 타는 것으로 계획을 틀었다. 이케아에 가려고 심호흡을 하고 나온 맨해튼 사람들 옆에서 우리는 스펀지로 된 자유의 여신상 왕관 같은 걸 쓰고 미국 국기를 흔들며 소리높여 놀았다.

군 입대 전 캐롤이 대구에 왔을 때 가서 만난 적도 있다. 야, 그게 벌써 오 년 전이구나. 그럼 캐롤과 알고 지낸 지는 칠 년이 됐단 얘기다. 캐롤을 만난 건 내 대학교 친구 관계도가 처음으로 크게 개정된 시기인 2학년 중반쯤이었다. 1학년 때 붙어 다니던 피렌체 여행을 함께했던 모범생(학장 스칼라 그룹에서 만났으므로) 무리가 서서히 흩어지고, 마르씬으로 대표되는 Tisch 영화과 및 CAS 영화비평과 친구들—그러니까 ‘씨네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을 때다. 캐롤과 나는 둘 다 씨네필 친구들(아 자존심 상해)이 많았지만 영화와 상관없는 공부를 하고 있는 점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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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캐롤과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한 달에 서너 번 꼬박 꼬박 보면서 지내는 사이가 된 것은 프랑스 유학을 함께한 덕이 크다. 캐롤 남자친구인 잭슨은 원래 내가 먼저 알던 사이였는데,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둘이 사귀기로 했다고 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잭슨은 지금은 나와 둘도 없는 친구지만 칠 년 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내가 흰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만나자마자 게이냐고 물어봐서 나를 당황시켰던 첫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특히 당황스러웠던 이유는 그 때 글에도 썼듯이 나는 잭슨이 게이인 줄로 생각하면서 물어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던 참이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칠 년 전에는 정말 다른 세계를 살았다. 오늘도 돌아다녔던 바로 그 동네에서지만.

어쨌든 다들 별 일 없이 산다고 생각하는데 해가 쌓이니 각자에 얽힌 얘기들이 꽤 늘었다. 맛에 비해 비싸지만 뒷뜰에서 할 수 있는 미니골프와 각종 재래식 놀이들이 마련된 꽃게 전문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손에 흙과 술을 묻히며 놀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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