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지를 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계좌 인터넷뱅킹이 만료되었길래 새로 신청했다. 고2 때 사진 그대로인 주민등록증도 새로 발급받았다. 사진은 채광 좋고 벽이 깨끗한 안방에서 발코니를 마주하고 서서 셀프로 찍어서 뽑았다. 공항에 두고 온 듯한 모자가 계속 눈에 밟혀서, 동생이 쓰는 배송대행 사이트를 통해서 기어코 새로 샀다. 자주 먹는 페타치즈는 마트 가격이 비싸서 업소용으로 꽤 크게 나오는 것으로 온라인 주문했다. 파미지아노를 한 덩이 같이 샀는데 택배에 페타만 들어 있어서, 전화로 클레임을 넣어야 했다. 도착한 페타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점심 샐러드에 넣거나 자몽에 꿀과 함께 곁들이고 있고, 파미지아노는 성탄절 기념으로 만든 로스트 비프를 얇게 썰어넣은 샐러드 위에 뿌렸다.

한국에서는 진정 오래간만에, 동네 미용실을 정해 두고 꾸준히 다니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집에 오면 사람 많은 동네에 굳이 가서 영업사원같은 미용사들에게 머리를 맡기는 일이 많았다. 굳이 잘 가지지도 않는 먼 체육관과 수영장을 고집하던 것을 버리고 단지 내 훌륭한 체육관을 간다. 동네 구석구석을 비집고 다니며 안 가 본 커피집을 가는 것도 좀 덜해졌다. 머리맡에 달린 콘센트에서 컴퓨터 충전줄이 줄줄 내려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평범한 커피집 한 곳에 벌써 나흘 연속으로 가고 있다. 생활의 모서리들 중 몇 개는 일단 고정해 놓아야 한다. 작은 변수의 진동에서 오는 작은 자극으로만 하루를 채우다 큰 변수들은 내버려 두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단 올해가 끝나면 지금 마음이 뻗혀 있는 모양에서 가지를 많이 칠 수 있을 것이다.

  1. Jane Park

    괜저님 글 가끔 들어와서 한꺼번에 밀린 것 다 읽고, 또 다음을 기약하며 지내고 있다가 다시 들어와 밀린 것 읽고… 그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번에 아예 사이트 하나 만드신 것, 축하드립니다. 님 블로그에 들어오면, 글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폰트부터 여백까지 일단 모든 것이 다 아름다와서 막 머리 한 쪽이 저릿저릿합니다. 이런 글과 사진 계속 나누어 주세요. 살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1. 김괜저

      제가 감사합니다. 더 아름답고 재밌게 만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