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폰을 두 번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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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을 두 번 바꾸는 동안 말을 안 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꾸기 전엔 이러저러해서 바꾸려 한다고, 바꾸고는 이러저러한 점이 좋다고 미주알고주알 보고서를 썼을 것이다. 밖으로 향해 있는 채널의 수나 나가는 내용의 양은 점점 커지고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딱히 긴 글을 덜 쓴다는 것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쨌든 미국에서 가져온 흰색 아이폰 5C는 한국 도착 전부터 시름시름 앓았다. 시계가 고장나 계속 태엽을 감듯이 시각을 맞춰 주지 않으면 안 되었고, 블루투스와 와이파이가 계속 뚝뚝 끊어졌다. 구글을 이 잡듯 뒤졌지만 스페인에도 나와 같은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는 점 말고는 전혀 정보를 찾지 못한 고장이었다. 소호 애플 스토어 직원은, 이미 답을 알고 온 나 같은 손님을 맞을 때의 방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생기게 웃으며 내 셔츠를 칭찬했다. 한국에 와서 아빠가 쓰던 아이폰 5S를 쓰기 시작했다. 얌전히 사용한 상태 좋은 폰이었지만 중고는 중고인지라 배터리가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첫 월급을 기다려 까만 아이폰 6S를 샀다. 불편했던 점이 대부분 해결됐는데, 이상하게 5C를 처음 샀을 때처럼 내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냥 불편한 점을 빠짐없이 해결해 준 구매일 뿐이다. 중고나 리퍼비쉬가 아닌 백 퍼센트 새 폰을 사서 쓰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사진기도 노트북도 그렇지만 어차피 장비를 계속 바꾸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으로서, 출시한 지 일이 년 지난 중고를 사서 중고 시장이 소멸할 때까지 쓰는 건 전혀 절약이 아닌 습관이다. 새 것을 사서 거래가 반감기를 넘기기 전에 팔고 다시 새 것을 사는 편이 훨씬 이득임을 알면서도 주머니에 복종하느라고 그렇게 하지 못했던 면이 있다. 이제 조금씩 그러고 있지만, 치열하게 비교하고 꼼꼼히 따지고 지칠 때까지 뜸을 들여서 하나씩 사들인 중고 기기들만큼 내 영혼을 투사하지는 않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