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속도를 보며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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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배우는 일은 신난다. 물론 끝까지 배우고 나서야 그렇다. 배우지 않고도 적당히 할 수 있는 일을 배워서 더 잘 하려 하면 몇 배의 힘이 든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 배우지 않고도 많은 말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능력을 얼마나 스스로 통제하고 있는지에 따라 배울 기회를 쳐내는 사람도 반기는 사람도 될 수 있다.

요즘만큼 모르는 것을 압축해 배우며 전진하는 때도 참 오래간만이다. 그 속에서 오늘은, 내가 잘 모르는 주제에 대해 내가 아는 것보다 25% 정도 더 아는 사람처럼 얘기했다. 내 입장만 걸려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공동방어적—부풀림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후회의 잔맛이 남았다.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는 자동으로 입이 다물어진다면 좋겠으나, 말을 뱉어보고 다시 주워담아도 보고 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당연히 늘 틀리려면 어떻게 틀릴 것인가란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어떻게 틀려야 잘 틀리는 것인가?

잘 틀리려면 태도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태도가 틀림에 대한 반사적 반응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틀린 부분을 반사적으로 인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의 차이야 크지만, 즉각적으로 표현하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틀림에 충분한 공간을 주어 그걸 왼쪽 오른쪽으로 뜯어보고 난 다음 내가 이랬다, 얘기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빨리 배우겠다는 욕심도, 배울 필요가 없다는 자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리고 공부는 머리 밖으로 정보가 흘러내리지 않게끔 속도를 봐야 한다. 아침 사무실 커피머신과 가습기—발뮤다 제품이다—에 물을 채우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이처럼 누구나 아는 뻔한 좋고 좋은 얘기를 굳이 퇴근한 밤을 들여 적는다.

  1. ㅇㄹ

    좋구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