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 좋고 나 좋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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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허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반으로 나누어 먹으면서 일과 공평함에 대한 얘기를 몇 시간 했다. 엄마는 함께 어울리는 현직 교사들이 S, A, B 등급으로 학교마다 상대평가되는 성과급 시스템에 대한 얘기로부터 출발했다. 나는 어제 본 <비밀은 없다> 얘기도 하고, 내가 페어팩스의 초교와 민사고에서 받은 교육에 각각 깔린 전제들에 대한 얘기도 했다. ‘너도 잘 되고 나도 잘 되는 것이 좋다’ 같은 말은 경우에 따라 틀림없이 합리적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무슨 뺨 맞고 뺨 내어주는 사람 보듯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제 몫보다 더 챙기려고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 눈을 똑바로 보고, ‘네가 지금 이랬잖아, 이거 잘못된 거 네가 알잖아’ 하면 다 알 만한 것들이 그냥 기준선이 되어 버린다.

일, 그러니까 어떤 일을 했다고 치고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보도자료를 만드는 것 말고 ‘진짜 일’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셋만 모여도 조직이고 사회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공동의 목표와 구성원 개개인의 목표를 한 쪽으로 정렬하는 일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에 따라 게임이 제로 섬이 되기도 하고 윈-윈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원리는 너무나 자명해서 조금만 내 일이 아닌 것처럼 거리를 둘 기회를 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데, 어쩜 이토록 절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그것을 외면하도록 훈련하는 사회가 다 있을까? 너 좋고 나 좋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상상력이 바닥난, ‘네가 그럼 난 뭐가 되니?’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바닥에 무엇을 쌓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문명이 ‘꺾였다’는 투의 염세로 마무리할 수 밖에 없는 문단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