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운한 기분도 뿌듯한 기분도 아니다.

추운 날이었는데 종일 걸어다녔다. 오른발 한쪽이 살짝 안 좋은데 그러니 더욱 걷고 싶었다. 옛날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 가 보았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험상궂은지를 보았다. 육교를 건너다 말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후 네시쯤 비스듬한 빛을 받는 것들을 사진 찍었다. 내 사진을 보면 주말을 알 수 있는데 보통 힌트가 오후 햇살이다.

교회에서 나온 젊은 사람들이 뻣뻣한 분홍색이나 베이지색 울 코트를 입고 반대편 카페로 무리지어 들어갔다. 나는 내 두꺼운 패딩 점퍼 속에 숨어서 걷던 중이었는데,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기능적인 옷이다. 두껍고 무겁고 비싼, 양손을 펭귄처럼 옆구리에 붙일 수 있게 45도 주머니가 가슴께에 달린 패딩이다. 이 옷을 입으면 주인공으로서의 내가 어딘가 다른 곳에 잠시 가 있는 동안, 조용히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기능으로서의 내가 열심히 곳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서운한 기분도 아니고 뿌듯한 기분도 아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택시 타기에 관한 글을 썼다. 그 글은 내가 옛날 랩탑에서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퇴근길 카페 꼼마 이층에 앉아 퇴고하다가 시스템이 툭툭 나가더니 이튿날 죽었다. <뒤로> 작업도 그 때문에 마감을 못 맞췄다. 장비에 문제가 생길 때 내 컨디션이 얼마나 추락하는지 보면서 나에 대해 또 한 가지 배웠다. 하긴 열 살 때쯤, 소리지르는 법을 아는 줄도 분명하지 않았던 나란 아이가 플로피 디스크 열 개 정도 갈아 끼워야 설치되는 게임이 마음대로 안 깔리자 눈이 뒤집히고 난동을 부렸다고 그랬다. 요즘은 그냥 문제가 발생한 장소로부터 멀리 떠나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작게 하나쯤 하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