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과 사람의 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일과 사람이 맺는 관계, 즉 사람의 생각과 삶에 일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는 해야만 하는지에 관한 주제에 끌린다는 점을 자각했다. 재작년까지 Collabodate 또는 Skillcard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만들어보려 했던 시도는 창의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함양할 기회만 있다면 우리 모두일 것이다)들이 자신의 능력과 관심사를 주제로 사람을 만나고 협업하는 기회를 드라마틱하게 늘려주는 서비스를 만든다면, 일이 단순한 직장이 아닌 관심과 의미의 생성으로 재설정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텀블벅에서 일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느끼는 이유 역시 자본이나 생산도구를 독점하는 기업이나 조직에 몸담지 않고도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둘 다 일을 의미있는 것, 즐거운 것, 자유의 제한이 아니라 자유의 표현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꿈으로부터 힘을 얻는 사업이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의미있는 일이라고 여긴다는 것이 바로 내가 내 일에 대해 갖는 생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얼마 전, 좋은 첫인상을 받았던 사람이 자신의 일로부터 그 어떤 의미도 재미도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수동적일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을 때 내 마음이 강을 건너버리는 것을 알아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일에서 흔히 말하는 ‘자아 실천’ 같은 것을 찾는다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 취향을 발현시키는 데에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구상이 없는 사람과는 나눌 수 있는 공감의 깊이가 무척 얕다는 것을 매번 확인한다.

일과 사람의 관계는 우리가 애써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대도 우리 세대 안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격변할 것이 틀림없다. 직장은 사라지거나 파편화될 것이고, 프리랜서는 고용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사이드 프로젝트’는 주업이 될 것이고, 가장 오랜 기간의 트레이닝이 필요한 ‘보장된’ 직무부터 자동화될 것이다.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의미없는 일은 당연히 아니다. 저항을 통해 큰 흐름을 돌릴 수는 없어도, 흐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를 바꿔놓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저항 대신 그 변화의 방향과 톤을 제어하는 일에 동참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한 일을 내가 ‘맡아볼’ 수 있을 거라는 자세가 내가 생각해도 퍽 대담하긴 하지만, 누군가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1. 안여름

    요즘 직장에서 힘듦을 겪고 있어서 이 업이 나에게 맞나?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위에서 지인이 말하신 것 “철저하게 수동적일 수 있는 업이 나에겐 더 맞지 않을까? 업은 돈벌이로 아주 분리해서 생각해야하나?란 생각도 했구요.
    괜저님 글을 읽으니 문제는 업 자체에 있던게 아니라 그 업에서 의미를 못찾지 못함에 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잊고 있었던 것ㅡ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업 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이유, 사치라는 “자아실현”으로 강하게 동기부여되는 사람이었단 것도 다시금 기억했습니다.
    허허 하마터면 괴로움에 매몰되어 더 안좋은 선택을 할 뻔 했어요. 이 업을 선택한 의미, 그 업으로 뭘 하고 싶었는지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싶네요. 고마워요.

  2. sunho

    사는 것이 바빠 못했다고 핑계 대기에는 편하게 사는 것 같고, 직장에서의 하루 여덟시간이 보람 차냐면 또 건조하게 지내는것 같고. 두번째 문단에 공감하며 “어머, 이것도 이렇게 잘 했어. 오늘 한 일도 이거 정말 끝내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오랜만이에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