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 피곤한 건 상관없다.

박근혜를 탄핵하라는 구호를 처음 외치러 나갔던 날에 남대문에 내려서 통제된 세종로 따라 걸어 올라갔다. 촛불을 든 사람 확성기를 든 사람 팻말을 처든 사람들이 점점 빽빽해졌다. 분명 모두들 비슷한 말을 외치고 있었고 나도 함께하러 온 것이었지만 내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좀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시청쯤 다다라서 높다랗게 든 무지개 깃발 주위 한줌의 사람들이 보였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진보정당 내 성소수자 위원회, 신생 퀴어 페미니스트 유닛들. 그 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그제서어 목소리가 나왔다. 박근혜를 탄핵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를 대여섯 번 외치면 한두 번은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군형법상 추행죄 폐지하라 외쳤다.

이후 촛불문화제건 시위건 일단 여성들과 성소수자들이 모인 곳부터 찾아다녔다. 내가 촛불 속에서 다같이 ‘넘실거리는’ 경험에 취해 우리가 민주주의 만들었다 같은 속편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는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탄핵은 되었지만 박근혜가 밉다고 여자 후려치는 세상은 가지 않았다. 정권교체는 되었지만 보수 기독교 무섭다고 성소수자 내던지는 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당선권 밖 후보들 합리적 지지하기에 역사상 가장 좋은 선거였지만 표 저당잡힌 듯 겁박하는 맹목적 팬클럽 지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드 배치 대체로 찬성하고 교육개혁과 4차산업혁명이 국가적 의제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며, 국가주도 일자리창출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정의당이라는 집단을 기본적으로 크게 신뢰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 기간동안 심상정이 아닌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대권주자로서 성소수자 인권포럼에서 축사하고, 게이들이 합동 제출한 성소수자 대선주자 요구사항에 차별금지법과 군형법상 추행죄 정확히 들어 답변하고, 동성애 반대한다는 토론에서 1분 할애해 기본을 확인시킨 후보가 한 명이라도 있었고 그 모든 것은 기록되고 축적될 것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정치가는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고 그의 행보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시민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선택을 하면 될 일. 내 인권 찾아 표를 움직이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피곤하지만 그야 본디 세상이 피곤하기 때문이니 개의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