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에 의도가 있게 한다.

운좋게 성숙하는 조직에서 일하면서 전에 없었거나 체계 없이 굴러가던 일들의 기틀을 잡는 일을 번번히 맡게 되는데 할 때마다 어렵지만 즐겁다. 일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여유 확보, 일을 ‘하나씩’ 할 수 있는 순위 설정, 일을 ‘각 잡고’ 할 수 있는 규율 부여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일을 다시 본다. 그리고 내게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나 ‘자격’이 부여되어 있는지보다 내가 일을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전진시키는지 그 현실적인 효과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되물을 때 쓰는 기준으로 똑같이 외부와도 투명하게 소통한다. 어려운 일이다.

천적과 한강진 샐러드집에서 주말 점심을 괜히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사람들 대부분이 서로와 함께 일을 벌이며 생활하는 면면이 얼마나 단순 물리적, 생리적인 원칙들에 의해 지배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강형욱씨가 동물을 다룰 때에 얼마나 의도를 정확히 상대에게 전달하고 그 효과를 확인하는 단순한 원리를 중시하는지. 사람끼리의 사회적 관계들이라는 것도 얼마나 우리가 젠체하는 겉모습에 비해 단순한 힘과 선형성에 의해 진행되는지. 단순한 원리들을 깨닫고 그를 실제 관계에 실천하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성숙하고 귀한지.

동물뿐 아니라 기계와 인간을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간이 기계다울 수 있을까 기계가 인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의문’의 형태로 오랫동안 끌고 가면서 재밌어하는 사람들은 재미 없는 사람들이다. 재미있는 사람들은 기계답기로 마음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재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의도를 가진 행동의 비율(의도가 없는 행동과의)을 높이고 정확한 인풋과 아웃풋 프로토콜을 갖추는 일. 혼돈을 도입할 때 역시 혼돈을 정확한 의도로 정확한 양 만큼 자로 잰듯 도입하는 일. 정시에 예측을 출력하고 한 사이클 뒤 예측과 실측을 비교해 다음 사이클에 반영하는 일. 그런 사람은 좋은 기계일까? 아니,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