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저렇게

괜스레 저렇게는 김괜저(@gwenzhir)의 블로그이오니 잘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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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정짓기 싫다.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상태다.

근거 1: 일단 지하철 좋은 글귀 액자에 그렇게 써 있다.

근거 2: 스님들도 수녀님들도 늘 이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근거 3: 일하다 보면,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끝없이 더디게 하는 경험이 반복된다. 남이 그러는 것 한 번 보면, 내가 그랬던 적 한 번 발견한다. 누가 A를 말하면, 앞다투어 「내가 알기론 A는」 또는 「내 경험상 A를 하게 되면」 과 같은 말을 던진다. 이런 말보다는 차라리 「좋다」 「싫다」 같은 반응이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또, 누군가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나서 그 결과가 펼쳐졌을 때,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을 하기는 더 쉽다. 그런 게 모여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11시에 걱정하고 13시에 훈수 두고 17시에 후회하는 조직이 만들어진다.

근거 4: 제프 베조스 같은 자가 어떻게 사업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비즈니스 인사이더 류의 글에도 무수히 반복된다. 데이터를 활용해 일을 처리하는 체계를 마련해 놓는다 할지라도, 실제 그 체계가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으면 체계 자체가 시키는 방향으로만 치우치게 된다. 맥락이 중요한데, 「지난 번엔 이랬지」 하면서 납작한 결론을 낸다. 모든 결정은 새로운 결정이고, 아무리 똑같아 보이는 경우라도 다른 구석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근거 5: 지금 읽고 있는 〈Thinking in Bets〉에는 이런 내용이 좀 더 적나라하게 나온다. 저자는 인생은 포커이지, 체스가 아니라고 말하며 ‘운’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방식을 이해해야만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정이 옳더라도, 결과는 안 좋을 수 있다. 좋은 결정권자는 그 간극을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려면 결과가 안 좋았으니 결정이 틀렸다고 단정짓는 99.99%의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결정이란 과정 자체를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것도 안 된다. 물론 어려운 결정을 내리다 보면 「어려운 결정을 하는 나」를 미화하는 정치인 자서전 류의 서사에 손이 자꾸 가게 된다. 하지만 고뇌를 많이 한다고 반드시 결정의 품질이 높아지지는 않으며, 결정의 품질이 높아진다고 불운을 차단할 수는 없다. 과거를 복기할 때에는 서사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적절히 차단해야 한다.

근거 5를 써 놓고 나서 내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 1번이 누군가 하니 당연히 본인인데, 과거를 복기하면서 서사로 만들어내려는 욕망은 곧 내 미들 네임이기 때문. 내 모든 글이 그렇고 내 트윗 하나 하나가 그렇고 특히나 2쇄에 들어갔다고 하는 〈IMF 키즈의 생애〉(축하합니다!) 에 실린 내 인터뷰가 그렇다. 은별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인터뷰 녹취록에 이미 서사가 강력하게 부여되어 있어서 가공이나 해석이 가장 적었다고. 그런 내 욕망이 책을 재미있게 할 수는 있었을 것 같아서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영역에서는 뿌듯함을 주지만, 내가 실시간으로 삶을 삶과 동시에 서사로 끼워맞춰서 정리하는 습관이 내 판단력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좋게 만들지는 못한다. 서사란 본질적으로 허구다. 따라서 이렇게 특정 변곡점에서 정리가 될 때마다 (‘변곡점’도 물론 허구인데)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맥락 위에 놓인 내게 주어진 결정들을 새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원래 쓰려던 형식을 중간에서 내던지고 아무렇게나 끝맺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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