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동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어졌다.

용산에 6개월 살면서 부동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단지가 ‘용산 미친 집값’ 뉴스에 나오더라. 박원순 시장이 싱가폴에서 용산을 이렇게, 여의도를 이렇게 말하니 빨간 선이 즉각 움직이더라. 왜 약국도 없는 단지에 공인중개사는 세 군데씩 있는지 이제 알겠다.

씨니컬한 관심만 생긴 것은 아니다. 월세를 내기 위해 월 단위로 돈을 관리하며 사는 데 워낙 익숙하다 보니 다른 형태의 주거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참 없었구나 싶었다. 집을 산다는 그 말도 안 되게 들리는 행위는 어떤 경로로 가 닿게 되는 것이었나?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30대에 집 사는 법에 대한 책이었고 하나는 ‘그래서 왜 결국 서울인지’를 고려 시대 역사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부동산 책들은 독자의 욕망에 너무나 충실하기 때문에 읽을 때 어딘가 산뜻한 구석마저 있다. 작년에 지인이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에 대해 길게 설명해 주던 걸 대충 알아들었다 생각하고 끄덕이기만 했던 것이 기억났다. 디딤돌 대출의 조건을 알아보고 ‘계산기’도 돌려 보았다. 가상으로 계산만 해 보는 거라면 참 재미있다.

예전에 지도 만드는 회사에서 일했을 때 제일 재미없는 것이 집값 데이터였다. 범죄율, 소득, 인종 같은 데이터는 너무 재미있는데 집값을 갖고 뭘 이해할 수 있는지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지도 곳곳에 가격표가 붙어 있는 화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여기는 왜 이런가. 이 동네 놀러가면 너무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곳인데 대체 왜 이런가. 호갱노노(이름 노노)도 보고 직방 다방도 보고 다음부동산도 본다. 동시에 부동산 지도 UX에 대한 생각도 늘지만… 노노! UX 같은 데로 생각이 빠지면 안돼. 집값으로 돌아가자.

이 모든 것은 사실 개인 금융에 대한 태도 문제로 돌아간다. 돈이란 참 개인적인 것이라는 것을 올해 들어 무척 많이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경제 태도는 주로 소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소비나 절약에 대한 것들. 특히 외국 생활하면서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소비였다. 임금을 협상하거나 부업을 갖는 등의 자유가 없었고 신용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몇 년간 사회가 생각하는 경제-정상인으로 살아보니, 소득에 대한 내 태도를 갑자기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많았다. 더 최근에는, 그 전까지는 그냥 그런 건 없다손 치고 살았던, 부채라는 것에 대한 태도는 더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빚 뭘까. 돈 뭘까. 집 뭘까.